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 1758~?)의
월하정인(月下情人)이다.
감상자마다 평이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이 그림의 매력은
왼쪽의 찬문(撰文)에 있다고 생각한다.
月沈沈夜三更(월침침야삼경)
兩人心事兩人知(양인심사양인지)
달빛 침침한 깊은 밤
두 사람의 마음속 일은 두 사람만 알겠지
'兩人心事兩人知
(두 사람의 마음속 일은 두 사람만 알겠지)'.
주저리주저리 말 늘어놓지 않고
다양한 해석의 여지와 여운을 남겨둠으로써
우리 전통 미술이 지닌
여백의 아름다움을 글로 보는 듯하다.
프랑스의 시인 장 콕토(1889~1963)의 '산 비둘기'다.
산비둘기
산비둘기 두 마리가
정겨운 마음으로 서로
사랑했습니다
그다음은
차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 몇 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
이 시에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그냥 읽고 또 읽을 뿐이다.
장 콕토의 '산 비둘기'와
월하정인의 '兩人心事兩人知'.
둘 다 그 이후의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다 해버렸다면
오늘날까지 널리 알려졌을까,
아니 그 이전에 그건 시도 아닐 것이다.
읽어도 읽어도 질리지 않는
간결하고 함축된 시를 대하면
말 많은 우리 세상을 생각해 보게 된다.
의미도 영혼도 감흥도 전혀 없는
공허한 말 말 말······
어떤 말은 세상을 이롭게 하기는커녕
세상을 갈라놓기도 하지 않는가.
귀를 씻고 싶은 허황된 말 대신,
가끔, 아주 가끔이라도,
단 한 마디라도 울림이 큰 말을 듣고 싶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다시 장 콕토다.
귀
내 귀는 조개껍질
바다 소리를 그리워하오
* 월하정인(月下情人)이라는 제목은 신윤복이 붙인 게 아니다.
후대 사람들이 붙인 이름으로, 야행(夜行)이란 별칭도 있다.
* 兩人心事兩人知는 김명원(金命元, 1534~1602)과
심희수(沈喜壽, 1548~1622) 등이 이미 사용했던 문구다.
* 선인들은 요즘의 '애인(愛人)'이란 표현 대신
'정인(情人)'이라 일컬었다.
애인은 일본에서 들어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