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이나 나들이를 자주 하는 편이다. 이런 활동은 퇴직 후 시간 때우기일 수도 있는 극히 소소한 일상이어서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어느 날 산행 후 멈춘 듯 흐르는 강물이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윤슬이었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내 인생에도 앞으로 윤슬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삶이 있을까를 생각하다 그것이 바로 지금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날 하루를 복기해 봤다. 하늘 높고 청명한 날 아내랑 산을 올랐다. 그리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에 알싸한 숲 내음을 밟으며 산길을 걷고 있노라니 걷는다는 게 그리 성스럽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자주 산행을 하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상쾌한 기운이었다. 정상 직전 조망 빼어난 너럭바위에 앉아 도시락 까먹고 커피 한잔하니 자연의 무게감에 경건해져서일까, 저 아래 세상 모든 일이 소소하게 느껴졌다. 내려오는 길에 따사로운 햇살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아담한 폭포 옆에서 잠시 쉬었다. 그저 숨만 쉬고 있어도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음이온 넘치는 계곡이었다. 집으로 오는 어둑한 저녁, 추어탕 집에 들러 걸쭉한 추어탕과 함께 걸쭉한 막걸리 한 통을 비우니 기분 좋은 피로감과 기분 좋은 취기가 온몸과 마음을 휘감았다.
이날 한 거라곤 산을 오르내리고 먹고 마시고 한 것뿐, 무심히 흐르는 강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산행으로 땀에 젖은 추레한 몰골 안에 상쾌하고 기분 좋은 내 몸과 마음이 들어 있듯 시들시들한 내 삶의 물줄기를 반짝반짝 비추는 윤슬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밋밋하고 지겨운 대부분의 일상 속에서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은 얼마나 될까. 하나 나 스스로가 그런 순간을 찾아내거나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의 가치는 아무도 재단할 수 없고 오로지 내가 결정하는 것인 까닭이다.
박노해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중 '삶의 나이'에 나오는 내용이다.
"악세히르 마을로 들어가는 묘지의 묘비에는 3 5 8...이라는 숫자들이 새겨져 있다. 이 숫자들은 나이가 아니다.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는 동안 진정으로 의미 있고 사랑을 하고 오늘 내가 정말 살았구나 하는 잊지 못할 삶의 경험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자기 집 문기둥에 금을 하나씩 긋는다. 그가 이 지상을 떠날 때 문기둥의 금을 세어 이렇게 묘비에 새겨준다. 여기 묘비의 숫자가 참 삶의 나이라오. 누구는 100세를 살고 50을 산 이도 있고 또 50을 살고도 100을 산 이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