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람 전기, <계산포무도>

by 길벗


그림을 보는 눈은 없지만, 많이 보다 보면

열에 하나 정도는 눈에 들어온다.

그중 하나, 아니 내 눈에 들어온 그림 백 중

최고로 꼽을 만한 그림이 계산포무도(溪山苞茂圖)다.

고람(古藍) 전기(田琦, 1825~1854)의 작품이다.

계산포무는 계곡이 있는 산에 초목이 무성하다는 뜻이다.

고람은 조선 후기에 활동한 서화가이자 문인이다.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

추사는 고람에 대한 기대가 커서

자신보다 더 나은 예술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청출어람(靑出於藍)에서 글을 따 '고람(古藍)'이라는

아호를 지어줄 정도였다.

<계산포무도>, 종이에 수묵, 24.5x41.5cm, 국립중앙박물관


고람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작품이

1849년 그의 나이 25세 때 그린 계산포무도다.

그냥 잠깐 사이에 쓱싹쓱싹 붓이 몇 번 왔다 갔다 한 듯

가벼우면서도 또 한편으론 장중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지진이나 태풍으로 산천초목이 떨고 있는 듯도 하고

과거에 급제한 이가 말 한 마리 렌트하여

고향 앞으로 날래 달려가면서 스쳐 지나가는

산천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인 유홍준의 설명은 이렇다.

"간결한 구도에 스스럼없이 속사(速寫) 하여

단 몇 분 만에 그려낸 것 같은 작품이지만

사의(寫意)가 역력하여 선미(禪味) 조차 감돈다.

나이 스물다섯에 그렸다는 것이 더욱 놀랍다.

화제 글씨를 보면 오래 사용하여 붓끝이 갈라지는

독필(禿筆)을 사용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그림은 흉내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며,

흉내 내어본들 객기가 드러나 추하게 되고 만다."

- 유홍준, <명작 순례> 중에서


미술평론가인 손철주는 이 그림을 이렇게 봤다.

"계산포무도는 참으로 허허로운 작품이다.

마치 싸리 빗자루로 마당을 쓸어놓은 것처럼

몽땅한 붓끝이 종이 위를 듬성듬성 훑고 간 자취는

보는 이의 마음까지 스산하게 만든다."

- 손철주,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불행하게도 고람은 1854년,

나이 서른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당시 대표적인 문인 화가이자 추사의 제자이기도 한

우봉 조희룡(1789-1866)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사를 읊었다.

"아, 슬프다. 일흔 먹은 노인이

서른 살 청년의 일에 대해 쓰기를

마치 옛 친구 대하듯 하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차마 할 노릇이랴.

흙덩이가 아무리 무정한 물건이라지만

과연 이 사람의 열 손가락을 썩힐 수 있겠는가."


- "흙덩이가 아무리 무정한 물건이라지만

과연 이 사람의 열 손가락을 썩힐 수 있겠는가."

나는 이 글에서 할 말을 잊었다.

감동으로 다가왔다는 식의 상투적인 표현 따위는

감히 쓸 수 없을 정도로

신선하고 격조 높은 무언가가 느껴졌다.

우봉의 글은 또 하나의 그림이었다.

미인박명이라 했던가!

겨우 30년을 살면서 대작을 그린

고람이 수(壽)를 다했더라면!

하는 강한 아쉬움은 우봉의 차원 높은 조사가

어느 정도 달래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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