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광규, <속초에서>

by 길벗


속초에서

- 공광규


겨울 부두 끝에 서 있는 등대가

추위에 몸이 얼어 빨갛다

등대가 바닷가에 나온 이유는

망망대해에 나간 배를 기다리는 것


그것도 모르는 멍청한 바람은

등대가 불에 잘 익은 소세지인 줄 아는지

게걸스럽게 먹어보려다 이가 시려서

웅웅 언 입으로 벙어리처럼 운다


철없는 파도도 그것을 먹어보려고

달려들다 넘어져 이빨이 부러진다


얼굴이 빨갛게 언 어머니 한 분이

방파제에 생선 구럭을 들고나와

등대처럼 앉아 모닥불을 쬐며 존다


그걸 내려다보는 흰머리 설악은

마음이 안 좋은지 그늘이 깊다.


- 속초 해안의 방파제 난전 풍경이다.

묘사가 동화 같고 그림 같다.

겨울바다가 낭만적이라는 말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수긍할지 모르지만

그놈의 얼어 죽을 낭만 때문에

겨울 속초를 찾은 적이 있다.

시퍼런 물색을 보고 차창을 여는 순간

얼굴색은 시퍼렇게 변했고 마음은 닫겼다.

겨울바다를 점령한 겨울 바닷바람 때문이다.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해서 바다지만

겨울바다는 바람만 받아들인다.

바람 불어 더 춥고 더 황량하다.


속초하면 동해바다와 설악산이다.

설악의 연봉들이 저 높은 곳에서

골목골목 구석구석을 내려다보면서

강추위에도 난전을 열고 있는 사람들을

굽어살피고 있었다.


여기저기 여행도 많이 다녔고

여행기도 꾸준히 썼다.

속초만 해도 백 번은 족히 넘는다.

이제 딱히 가보고 싶은 새로운 곳도 없다.

나의 여행기 표현도 죄 거기서 거기다.

내가 봐도 식상하다.


여행 자체도 시들시들해지고

여행기도 내 감성과 능력으론

더 이상 어찌해볼 수 없던 차

이 시를 만났다.

참신한 새로운 여행지를 만난 기분이다.

아니, 몇 번을 가본 곳도

새롭게 보는 눈을 키워야겠다는 자각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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