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글쓰기 시작한 지 15년이 됐다. 처음 5년간은 1년에 10편 정도 메모 형식으로 '비공개' 글을 썼다. 2015년 말 직장 퇴직하고 난 뒤 5년간은 당시 일상이던 여행과 산행을 소재로 글과 사진을 올렸다. 글쓰기가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본격적인 글쓰기의 역사는 시와 그림, 그리고 나의 일상 스토리가 대세로 자리 잡은 2020년부터다. 글쓰기는 퇴직 후 시간 때우기 성격이 강했다. 그래도 그렇지 글 쓰는 재능도 없는 데다 허접하기 짝이 없는 사진을 공개하다니, 생각하면 얼굴이 홧홧 거린다. 한편으론 글을 못 쓰는 게 외려 다행이다 싶다. 잘 쓴다면 금세 한 편을 뚝딱 쓸 텐데 타고난 재능이 없으니 글 하나 완성하려면 꽤나 오래 걸린다. 그래서 시간 때우기에 더욱이 유용하다.
결코 일반화할 수 없지만 글쓰기에 대해 나만의 의미를 부여해 본다. '성찰' 같은 실천적이고 고매한 단어는 내게 어울리지 않지만 퇴직 후 놀고먹는 백수의 추락한 자존감을 어느 정도 높여준다. 글감을 찾다 보면 별 볼일 없는 반복적인 일상에서도 그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찾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세상 만물이 다 공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비루한 나 자신까지 달리 보이게 되는 것이다. 나 자신을 깨우치게 한 점도 간과 못한다. (우리 모두를 포함하여) 나 자신 세상만사를 객관화하여 이야기하는 버릇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은 쏙 빼고 객관적인 척 남 이야기만 풀어놓는 것이다. 그 이야기가 나 자신을 지적하는 것이고 나 자신을 가르치는 건데 말이다. 내 글 덕에 내가 깨우치고 배우는 셈이다.
글을 쓰다 보면 글 자체에 대해 흥미를 느낀다. 다른 사람들의 글에도 집중하게 되고 책도 더 많이 읽게 된다. 여태 관심을 두지 않았던 분야의 글도 많이 접한다. 보고 싶은 글만 보면 오로지 한 방향으로만 시선과 판단이 쏠리게 마련이다. 다양한 분야, 다양한 인물의 글은 고지식, 고집불통으로 흐르기 마련인 노년의 사고의 폭과 유연성을 키워준다. 결국 나 자신이 성장하는 것이다. 어릴 적 내 취향이 아닌 옷을 형이나 다른 사람에게 물려받아 스타일이 다양해지고 결과적으로 더 세련되어진 것과 같다고나 할까.
회의가 생길 때도 있다. 글을 쓰면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뭐 하러 골머리 썩여가며 없는 문학적 재능과 감수성을 억지로 짜 내어 이 고생을 하는지. 여기서 나 자신을 되돌아봤다. 매사 완벽을 추구하는 건 아닐까. 잘 써야만이 글인가, 흥미가 있고 유익해야만 하는가? 이 또한 스스로 즐기기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욕이 앞서서인 듯하다. 성과나 성취에 대한 갈망과 인정도 필요 없는 것, 좀 모자라도 되고 또 서투르면 어떤가. 내 취미생활, 내가 좋아서 하는 일에도 남의 눈을 의식한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아무튼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꾸준히 글과 사진을 여기저기 올린다. 그러다 보니 여태 내가 인식하지 못한 내 재능을 발견했다. 뭔가를 꾸준히 하는 것, 이 또한 하나의 재능이 아닌가. 정호승 시인이 말했다. 한 일(一) 자를 10년 쓰면 붓 끝에서 강물이 흐른다고. 설마 내 붓 끝에서 강물이 흐르겠냐마는 흐르는 강물처럼 꾸준히 꾸준히 글을 쓴다면 내 마음속에나마 맑고 고요한 샛강 하나 흐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