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뵈러 부산을 다녀왔다.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형님이 간다는 소식을 접하고 갑작스레 따라 붙인 거다. 아들을 지극히 편애하는 어머니한테는 깜짝 쇼이자 원 플러스 원 행사인 셈이다. 그러나 '쇼'와 '행사' 취지와는 달리 어머니 댁에 머무는 3박 4일 동안 우리 두 형제와 어머니는 참 많이도 부딪혔다. 사사건건 언쟁이 그치질 않았다. 어머니의 지극한 자식 사랑, 집착 때문이다. 불효스러운 단어지만 딱 짚어 한 마디로 말하자면 고집이 문제였다.
어머니에게는 70 중반의 형님과 70인 나는 여전히 품 안의 자식이었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이거 먹어라, 저거 먹어라, 더 먹어라, 방은 춥지 않으냐, 이불 두꺼운 걸로 바꿔줄까, 간식 먹어라, 아직 환한데 왜 전깃불을 벌써부터 켜느냐... 애정 어린 말씀도 하고 또 하고 자꾸만 하니 잔소리처럼 들렸고 청소나 설거지, 세탁기 돌리는 것도 우리가 하면 될 텐데 꼭 당신이 하셔야 직성이 풀리는 듯했다. 한 번만 더 하시면 백 번이 되는 이야기는 백 가지가 넘는다. 물론 자식을 아끼는 마음에서 또 깔끔한 성격에 자식들이 못 미더운 것도 한몫할 것이다. 거기에 더해 어머니는 지금도 남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염치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타인에게 부담을 주는 일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어머니 연세에 이제 꼭 그렇게 안 하셔도 된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약간의 치매기에 더해 간섭과 지적을 하시니 티격태격이 끊이질 않았다.
그럼 형님과 나는 한 편이 되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며 원 플러스 원으로 어머니를 가르치려 든다. 우리 말이 백 퍼센트 맞는 말인 데도 어머니는 당신의 생각과 행동만 옳다고 여긴다. 그야말로 황소고집이다. 형님과 누나, 그리고 여동생과 나. 우리 사 남매는 누구 못지않은 착한 자식, 남들이 말하는 100점짜리인데, 어머니는 자식들 말이라면 죽는 시늉도 마다하지 않는 100점짜리 엄마였는데... 어머니는 90을 넘기면서부터 청력과 이해력과 인지력, 판단력은 떨어지고 고집만 세진 것 같다. 결국 형님과 내가 지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에 따라 고집에도 급이 있으니 94세의 어머니는 고집 최고수인 9단이시고 우리는 7단, 6단의 하수이니 말이다. 사실 우리도 할 말이 없다. 어머니의 앞뒤가 맞지 않는 말씀이 그저 세월 탓이려니 하고 받아들이면 되는데 그걸 굳이 고치겠다고 했으니 형님도 나도 고집쟁이임에 틀림없다.
나이 들수록 몸의 근육이 쪼그라들듯 이해력, 판단력, 기억력, 포용력이라는 삶의 근육도 줄어들고 고집만 늘어난다고 한다. 나 스스로도 그렇다는 걸 충분히 인정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니고 정답도 아니라는 것도 익히 알고 있다. 이제 우리 대의 부모님은 안 계시거나, 계셔도 예전 같지가 않으시다. 앞으로 우리 세대가 문제다. 결국 자식과 부모의 위치가 서로 바뀌어 자식이 부모의 보호자가 될 수밖에 없는데, 모두가 입버릇처럼 말한다. 적어도 자식에게 폐는 끼치지 않아야겠다고. 하지만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면. 그렇다면 나 자신을 어떻게 할 것인가, 대책이 없어 보인다. 참 답답한 세상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