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인 <아무도 모른다>, <조용한 일>

by 길벗


아무도 모른다

- 김사인


나의 옛 흙들은 어디로 갔을까

땡볕 아래서도 촉촉하던

그 마당과 길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개울은, 따갑게 익던

자갈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앞산은, 밤이면 굴러다니던

도깨비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런닝구와 파자마 바람으로도 의젓하던

옛 동네 어른들은 어디로 갔을까

누님들, 수국 같던 웃음 많던

나의 옛 누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배고픔들은 어디로 갔을까

설익은 가지의 그 비린내는 어디로 갔을까

시름 많던 나의 옛 젊은 어머니는

나의 옛 형님들은, 그 딴딴한 장딴지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나의 옛 비석치기와 구슬치기는,

등줄기를 후려치던 빗자루는,

나의 옛 아버지의 힘센 팔뚝은,

고소해 하던 옆집 가시내는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무덤들은, 흰머리 할미꽃과

사금파리 살림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봄날 저녁은 어디로 갔을까

키 큰 미루나무 아래 강아지풀들은,

낮은 굴뚝과 노곤하던 저녁연기는

나의 옛 캄캄한 골방은 어디로 갔을까

캄캄한 할아버지는, 캄캄한 기침소리와

캄캄한 고리짝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나의 옛 나는 어디로 갔을까,

고무신 밖으로 발등이 새카맣던 어린 나는

어느 거리를 떠돌다 흩어졌을까


- 이 시를 찬찬히 읽다 보면

슬며시 미소가 번지기도 하고

살가운 마음, 애틋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의 옛 나는 어디로 갔을까'에서는

그리움이 물결치듯 한다.


김사인 시인은 <조용한 일>이라는 작품에서

낙엽 하나 곁에 내리는 것을 보고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라고 노래했는데

실은 이런 시가 고마운 시다.

정말로 정말로 고마운 시다.


삶은 그냥 살아지는 것이고

또 그냥 살아내야 하듯

논리적 이해가 아닌

아무런 걸림 없이

그저 읽어 내리기만 하면 되는

이런 시가 좋다.


조용한 일

- 김사인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SE-a2374043-dd10-4929-9eff-d69096539855.jpg?type=w1 외암 민속마을(충남 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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