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택 <5인실>/홍성란 <축복>

by 길벗

5인실

- 김기택(1957~)


아까부터 침대에서 일어나고 있었는데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한평생이 가고 있다.

삐끗하면 어딘가 부러질 것 같은

허리를 일으키는 일에

삶의 모든 것이 걸려 있다.

침대에서 다 일어난다면

그동안 없었던 발이 나와

떨리는 슬리퍼를 신을 것이다.

하면 된다는 일념이

링거 거치대를 밀며

코앞의 머나먼 화장실로 갈 것이다.

누군가 먼저 들어가 있는 화장실에서는

오줌 소리는 들리지 않고

끙끙거리는 소리만 끈질기다.

건너편 침대에서는 요도에 관을 넣어

피 섞인 오줌을 빼내는

투명 플라스틱 통이 있다.

벌건 오줌이 반쯤 차 있다.

그 옆에는 일생일대의 힘을 쥐어짜

숨 쉬는 침대.

또 그 옆에는 기계로 목구멍

찰거머리 가래를 빼는 침대.

모터 소리에 맞추어 내지르는 지루한 비명.

그 소음 속에서도

깰 힘이 없어 할 수 없이 잠들어 있는 침대.

갑자기 유리창이 흔들리고 커튼이 펄럭이더니

병실 밖 어디선가 고성과 욕설과

악다구니가 들려온다.

아까운 건강이 함부로 낭비되는 그 소리를

번쩍 눈을 뜬 열 개의 귀가

한 방울도 놓치지 않고

링거 맞듯이 엿듣고 있다.


- 충격이다.

아름다워야 할 시가

너무나 적나라하고 사실적인지라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불편하다.

그렇다고 숨길 일도 아닌 것이

아주 흔한 사례이고

또 우리 누구나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응급실, 중환자실, 요양 시설, 호스피스 병동,

독거노인 숙소 등에서

지금 현재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나아지는 것도 아니면서

한사코 죽게는 못하게 붙잡아두는 현실.

그 유세 떨던 의술은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렇게도

살고 싶었던 바로 그 내일이라고"했는데,

과연 그럴까?

외려 먼저 저세상으로 떠난 친구들이 부럽지 않을까.


분위기를 바꿔보자.

이런 노년도 있다.


축복

- 홍성란


힘쓰는 기쁨 빼앗지 말라 설하시는 아흔두 살

삶은 밤 속살을 티스푼으로 긁어 드리니

아니야, 손가락으로 살살

내가 긁어먹는 손맛도 있지

숟가락 쥐는 힘이라도 쓰고

속살 긁어내는 힘이라도 쓰고

이렇게라도 움직거려야 살지

걷지도 못하고 뒹굴뒹굴, 하는 일이 없잖아

힘을 써야지 돈을 못 쓰면 힘이라도 써야지 살살

모녀의 빛바랜 사진 속에는

아홉 살 과꽃이 한창이었네.


- 아흔두 살에 이만큼이라도

손발을 놀릴 수 있다면 축복이란 걸까.

나이 웬만큼 들어 인생을 즐기지는 못하더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화장실도 가고

밥도 지어먹을 수 있다면 그건 분명 축복이다.


배우 양희경(66)이 TV 드라마 속 명대사로 꼽은 말이다.

"살면서 사지 육신 말짱하고

아무 일 없는 것만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데,

그걸 모르고 평범한 날들이 하찮은 날들인 줄 알고..."

사는 동안 씩씩하게 활기차게 감사하게 살아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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