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향미, <온돌방>

by 길벗


온돌방

- 조향미(1961~)


할머니는 겨울이면

무를 썰어 말리셨다

해 좋을 땐 마당에

마루에 소쿠리 가득

궂은 날엔 방 안 가득

무 향내가 났다

우리도 따순 데를 골라

호박씨를 늘어놓았다

실겅엔 주렁주렁

메주 뜨는 냄새 쿰쿰하고

윗목에선 콩나물이

쑥쑥 자라고

아랫목 술독엔 향기로운

술이 익어가고 있었다

설을 앞두고 어머니는

조청에 버무린

쌀 콩 깨 강정을

한 방 가득 펼쳤다

문풍지엔 바람 쌩쌩 불고

문고리는 쩍쩍 얼고

아궁이엔 지긋한 장작불

등이 뜨거워 자반처럼

이리저리 몸을 뒤집으며

우리는 노릇노릇

토실토실 익어갔다

아, 그 온돌방에서

세월을 잊고 익어가던

메주가 되었으면

한세상 취케 만들

독한 밀주가 되었으면

아니 아니 그보다

품어주고 키워주고

익혀주지 않는 것 없던

향긋하고 달금하고 쿰쿰하고

뜨겁던 온돌방이었으면


- 명절이 다가오면 어릴 적

시골 고향 집 구석구석이 떠오른다.

유년의 명절이 가장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당시를 생각하면

맹추위 속에서 어떻게 지냈을까?

그 나이에 메주 냄새랑 방안 콩나무, 무 냄새가

썩 내키지 않았을 텐데......

아무튼 나는 콩나물독 속 콩나물처럼 쑥쑥 자랐고

벽에 걸린 메주처럼 익어갔을 것이다.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의 혹독한 추위와 결핍은

험한 세상을 맵차게 살아가는

내성(耐性)이 되었으리라.


한 편의 시가 한 권의 책이나

빛바랜 두꺼운 앨범을 축약했다.

내 기억 속에 환하게 선명하게 남아 있는 풍경,

'60년대 내가 살았던 경남 거창군 거창읍 송정리의

고향 집 안방 모습 그대로다.

시가 나의 유년 시절을 노래하는 듯

하도 마음에 쏙 들어와

조향미 시인의 프로필을 검색해 봤다.

놀랍게도 시인은 나랑 고향이 같다.

시도 반갑고 시인도 반갑다.


SE-ada02185-615c-41d2-8642-729467c5bb37.jpg?type=w1 내 고향 송정리가 내려다보이는 거창군 거창읍(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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