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

by 길벗


1년 동안 한 가지 꿈을 수십 번 넘게 집중적이고 연속적으로 꾼 적이 있다. 복권 당첨의 꿈이다. 실제로 복권에 당첨된 적이 있다. 로또 1등 같은 초대박은 아니지만 꽤 살 떨리는 금액이었다. 1990년도에 50만 원이니 말이다. 세금 빼고 나니 42만여 원. 두 차례의 직장 회식 후 남은 돈은 3~4만 원 정도 됐을까. 내 생에 이런 행운이 다 오다니! 사실 이 기분 만으로도 충분했다.



문제는 복권 당첨 이후부터였다. 30대 초 젊은 시절이라 여러 사람들과 자주 어울렸고 술도 자주 마셨다. 딱히 정해진 순서는 없었지만 암묵적인 차례대로 술값 계산을 하는 게 관행이었는데 이게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이럴 땐 다들 눈치 보기 모드다. 평소 천 원 이하는 물 쓰듯 쓰는 소심한 기분파인 나는 술기운에 확실한 기분파로 변신, '에이, 그까짓 술값? 내가 계산하지 뭐. 또 복권 사서 당첨되면 되잖아~' 한 번 복권에 당첨되니 행운의 여신이 이왕이면 총각인 나한테 또 찾아올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안 써도 될 돈을 꽤 날렸다. 이걸 만회하려고 복권도 그 이상으로 구입했다. 결과는 꽝 꽝 꽝... 결산을 해보면 복권 당첨된 게 결국 마이너스로 작용한 것이다.



내 경우는 사행심을 조장하는 대표적인 복권의 폐해다. 하지만 복권을 구입하면 허황된 꿈인 줄 알면서도 꿈이 깨질 때까지의 며칠간은 마치 대박의 행운이 곧 내게 안길 듯 짜릿하면서도 넉넉한 기분이었다. '당첨되면 뭐 할까, 근사한 혼숫감(?)이라도 장만해 볼까, 아, 이번에는 나의 당첨 사실을 적에게 알리지 말아야지···.' 다들 '꿈 깨!'라며 타박할지 모르지만, 복권 성공과 실패 경험을 골고루 겸비한 내가 볼 때 복권, 적극 추천까지는 아니지만 사볼 만하다싶다. 복권은 꿈이기 때문이다. 꿈을 꿈이라 인정하지 않고 요행이니 사행심이니 하며 무조건 외눈으로 보는 게 더 문제다. 누가 뭐라 해도 우리에겐 꿈꿀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꿈 없는 삶이란 얼마나 무미건조한가. 물론 복권이 아니어도 좋고 복권보다 더 허황된 꿈도 좋다. 어떤 꿈을 갖더라도 마음속에 '절제'라는 고장나지 않는 브레이크 하나 박아 놓으면 될 일이다. 사람 팔자 모른다 했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하니 지갑 속에 꿈의 씨앗 하나 파종하는 것도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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