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설날>.
2025년 설 전전날인 1월 27일 창비
<시요일>에 실린 이정록 시인의 시다.
시인은 이 시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얘기했다.
"처음에는 산문으로 발표한 글이었기에
너스레가 많습니다.
새해에 또 복을 많이 지어서 편파적으로 나눠주세요.
사랑은 다 극단적인 편애니까요.
사랑은 편애의 총합입니다."
특유의 해학과 익살,
그리고 진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이정록 시인의 작품은
재밌거나 맛깔스럽거나 거의 둘 중 하나다.
그러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다.
간혹 콧잔등이 시큰해지며
은근한 감동을 주는 시를 쓴다.
이정록 시인을 안 좋아할 수가 없다.
<까치 설날> 전문이다.
까치설날 아침입니다.
전화기 너머 당신의 젖은 눈빛과
당신의 떨리는 손을 만나러 갑니다.
일곱 시간 만에 도착한 고향,
바깥마당에 차를 대자마자 화가 치미네요.
하느님, 이 모자란 놈을 다스려주십시오.
제가 선물한 점퍼로 마당가 수도 펌프를
감싼 아버지에게 인사보다 먼저 핀잔이
튀어나오지 않게 해주십시오.
아내가 사준 내복을 새끼 낳은 어미 개에게
깔아준 어머니에게, 어머니는 개만도 못해요?
악다구니 쓰지 않게 해주십시오.
파리 목숨이 뭐 중요하다고
손주 밥그릇 씻는 수세미로
파리채 피딱지를 닦아요?
눈 치켜뜨지 않게 해주십시오.
아버지가 목욕탕에서
옷 벗다 쓰러졌잖아요.
어머니, 꼭 목욕탕에서 벗어야겠어요?
구시렁거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마트에 지천이에요.
먼젓번 추석에 가져간 것도 남았어요.
입방정 떨지 않게 해주십시오.
하루 더 있다 갈게요.
아니 사나흘 더 자고 갈게요.
거짓부렁하게 해주십시오.
뭔 일 있냐?
고항에 그만 오려고 그러냐?
한숨 내쉴 때, 파리채며 쥐덫을
또 수세미로 닦을까 봐 그래요.
너스레 떨게 해주십시오.
용돈 드린 거 다 파먹고 가야지요.
수도꼭지처럼 콧소리도 내고,
새끼 강아지처럼 칭얼대게 해주십시오.
곧 이사해서 모실게요.
낯짝 두꺼운 거짓 약속을 하게 해주십시오.
내가 당신의 나무만이 아님을 가르쳐 주었듯,
내 나무그늘을 불평하는 일이 없도록 해주십시오.
대대로 건네받으셨다는 금반지는
다음 추석에, 그다음, 그다음,
몇십 년 뒤 설날에 받겠습니다.
당신의 고집 센 나무로 살겠습니다.
나뭇잎 한 장만이라도
당신 쪽으로 나부끼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