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없는 술자리

by 길벗


연초에 열 명의 벗이 뭉쳤다. 모두 우리 나이로 올해 칠순이다. 소주와 맥주, 막걸리를 주문했다. 소주에다 맥주까지? 간만에 소맥인가 싶어 기대 반 긴장 반이었다. 하나 술 속도는 예전 같지 않았다. 권커니 잣거니 대신 거의 반주 수준이었다. 소맥도 신년회라는 의식을 위한 식전주였다. 대화는 AI, 건강, 다른 친구들의 동정. 예전 같으면 한잔 술에 세상을 들었다 놨다 했을 터인데 목소리도 조용조용 나직나직, 주변을 한껏 의식한 거의 묵음 모드였다. 역사로 볼 때 2차 맥줏집은 필수, 노래방은 선택이었는데 이날은 모두 근처 카페에서 차와 디저트로 2차를 대신했다. 여기서도 혹여 물 흐릴까 스스로를 제어하는 모습이 역력했고 종업원들 퇴근에 지장 있을까 우리 스스로를 빨리 내쫓기도 했다.



이날 모임은 '단짠'이 빠진 음식처럼 밍밍했지만, 우리가 노인인 걸 우리만 모르고 있다가 이제야 알아차린, 뒤늦게 철든 자리였다. 나이 자체가 기저질환이 된 우리에게 술자리란 휘청거리는 자리가 아니라 오래된 우리 사이처럼 곰삭은 자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여태 '안 하던 짓'을 하면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술에 대해서 만큼은 '서른 즈음에' 머물러 있는 상선약주파(?)들이다. 이들은 '소주 한 병으로 끝내기, 2차 없는 술자리'라는 무거운 화두를 받은 셈이다. 몸을 사려야 하는데 여전히 몸을 불사를 생각에 젖어 있으니 몸과 마음의 괴리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



술자리의 묘미는 2차에 있다. 1차에선 맨숭맨숭 의례적인 시간이 되기 십상이고 술이 거나해지는 2차에선 이상하게도 다들 비밀스러운 얘기를 꺼내지 못해 안달이다. 결국 귀가 솔깃해지기 마련인 자극적인 얘기가 쏟아진다. 감추고 싶은 조금은 심각한 자신의 건강 문제를 비롯 집 안의 어두운 부분을 토로하는 고백이나 고해성사의 시간이 된다. 그러면 나만 아픈 게 아니구나, 너도 아프구나, 너는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나랑 별 차이가 없구나, 싶어 묘한 열등감이 해소되며 위로와 위안을 받게 된다. 우정에다 찐한 술기운과 동병상련의 정까지 더해지니 얼마나 유쾌하고 유익한(?) 시간인지 모른다.



나이 듦이란 포기의 지혜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내 마음도 1차에서 2차로 자리 옮기듯 절제와 일탈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벗들을 만나 심정의 허기를 달래는 데는 1차로는 부족하다 싶다가도 이제 술병 눕히려다가 본인이 눕게 될지도 모른다는 자각이 일기도 한다. 아니 분명 2차, 3차로 이어지는 일이 잦겠지라며 구체적인 모습을 그려보기도 한다. 노인이면서도 노인 아닌 척, 술 취했음에도 안 취한 척하는 나는 1차를 주장하면서도 2차에 대해서는 방조, 가담의 자세를 취한다. 술에 대해서는 술 취한 듯 오락가락하는 나의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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