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봄은 수상쩍다. 꽃 그리워할 새도 없이 꽃들이 들이닥친다. 어느 날 아침 외출길, 집 앞 벚나무에 꽃이 듬성듬성 보였다. '내일모레가 4월이니 곧 활짝 피겠지' 하며 들떴던 마음도 잠시, 오후에 돌아와 보니 마치 남의 동네에 잘못 들어선 듯 온 천지가 들썩이고 있었다.
이미 한차례 꽃잔치를 끝낸 매화와 산수유, 목련은 이 봄에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느긋한 자태로 꽃을 잔뜩 달고 있고, 앵두나무 그늘에는 핀 꽃과 피는 꽃, 이미 진 꽃과 지는 꽃이 뒤섞여 낭자하다. 예년 같으면 꽃망울을 언제 보여줄까 애태웠을 벚나무는 벌써 터널을 만들어 사람들을 빨아들인다. 조팝나무는 좁쌀만 한 하얀 꽃잎을 다닥다닥 달고 '나도 봄꽃이오' 나직이 외치는 듯하고, 명자나무는 '명자 씨'하고 부르면 꽃봉오리 속 꽃잎이 금방 얼굴을 내밀 것만 같다. 우리의 '푸른 봄' 시절에는 '5월의 꽃'이었던 라일락도 어느새 향기를 퍼뜨릴 채비를 하고, 금낭화 역시 복주머니를 언제 열어젖힐지 타이밍만 엿보는 듯하다.
달력상으로는 아직 이른 봄이건만, 민들레 제비꽃 봄까치꽃 돌단풍 같은 키 작은 들꽃부터 키 큰 꽃나무까지 거의 모든 봄꽃들이 동시에 아우성이다. 화려해서 좋긴 하지만, 너무 노골적이다. 꽃샘추위를 견디며 하루하루 꽃을 기다리는 애틋함, 새순이 몽실몽실 올라올 때의 희열, 옹알이를 하듯 벙글기 시작하는 꽃망울을 마주하는 그 짜릿한 환희를 음미해야 하는데, 이렇게 한꺼번에 피어나니 속수무책이다.
예전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어 봄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머물면 좋으련만. 꽃들도 속도와 경쟁, 눈치가 난무하는 인간 세상을 닮아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마치 모든 꽃이 한데 피어 있는 온실을 보는 듯하지만, 그래도 세상에 이쁜 것들은 다 용서가 된다. 봄볕이 무섭다. 환희와 함께 조급증이 인다. 꽃 구경, 서둘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