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 토요일. 날은 포근하고 대기는 맑고, 하늘에는 구름이 동동 떠다니는 꽃 피는 봄의 절정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을 보니 엉덩이가 들썩인다. 한창 꽃철에다 휴일까지 겹쳤으니 차를 끌고 멀리 나갈 일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고심 끝에 석촌호수로 향했다.
걸어서 5분 거리인 석촌호수는 내게 '잡아 놓은 물고기'다. 썩 내키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나 후대의 사가들이 이 '환장할 봄날'에 어떻게 집에만 있었느냐고, 잡아 놓은 물고기라 해도 이 꽃 대목에 어찌 그리 남 보듯 할 수 있느냐고 나를 다그친다면? 알리바이가 필요했다.
나의 무관심과는 달리 석촌호수는 꽃망울만큼이나 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다. 녹색 신호등이 켜지자마자 거리에서 호수로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새 꽃이 질세라, 다들 걸음이 바쁘다 바빠. 호수의 주인인 오리들은 인파에 놀란 듯 이 무슨 난리냐며 물음표(?) 모양의 자세를 취하며 잔뜩 긴장 태세다. 이 무렵 나라 안 어딜 가든 벚꽃이지만, 지금 내 눈앞의 벚꽃이 가장 아름다운 법. 게다가 환한 날씨 덕분인지 석촌호수의 벚꽃은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길 위의 벚꽃 터널, 물 위를 수놓는 꽃잎, '초속 0.5m'의 속도로 살짝 내 어깨에 내려앉는 꽃잎, 사이사이로 개나리와 진달래, 연둣빛 버드나무가 봄을 덧입힌다. 사람들은 2.5km의 호수 산책로 곳곳에서 이쁜 것들을 눈에도 담고 카메라에도 담는다. 평소에는 위세 좋게 군림하듯 보이던 초고층 건물도 이날만큼은 벚꽃 천국의 장식으로 보일 뿐이다. 모두의 표정도 벚꽃만큼이나 화사하다. 모르는 사람과도 쉽게 말을 틀 수 있을 정도로 달뜬 정취 속에 한 시간 남짓, 절정의 봄을 즐겼다. 석촌호수 벚꽃은 어제가 최절정이었고, 오늘은 10% 줄어든 90%쯤 남은 느낌이다. 하루에 10%씩 떨어질 것 같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가장 인기 있는 벚꽃 명소는 역시 석촌호수가 아닐까. 초고층 빌딩과 어우러진 세련된 풍경과 뛰어난 접근성이 장점이다. 송리단을 비롯한 주변의 맛집과 멋집도 빼놓을 수 없다.
화무십일홍. 열흘 가는 꽃이 없듯 벚꽃의 개화 기간도 짧다. 바람이 불거나 비라도 내리면 후드득 흩날려 금세 빈 가지로 바뀐다.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흔히 볼 수 있는 왕벚꽃보다 일주일 정도 늦게 피는 겹벚꽃과 산벚꽃도 이제 곧 피어날 채비를 하고 있다.
내가 으뜸으로 치는 벚꽃 명소는 용인의 호암호수와 호암미술관 전통 정원 '희원'이다. 호숫가는 왕벚꽃과 산벚꽃이 흐드러져 눈 시리도록 봄을 채우고, 희원에서는 산사의 고즈넉함과 고궁의 격조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과천 서울대공원도 빼놓을 수 없다. 아름다운 호수를 끼고 아름다운 벚꽃길이 3km 가까이 이어진다. 청평의 중앙 내수면 연구소도 빼어나지만 동선이 너무 짧다는 게 아쉽다. 한 바퀴 둘러보는 데 겨우 10여 분 남짓, 하나 '포장만 된다면 선물로 주고 싶은' 곳이다. 멀리로는 서산의 여러 산사를 비롯 서산 한우목장이 먼 길 왕래에 따른 수고를 보상해 주는 겹벚꽃 명소다. 가장 아끼는 곳은 서산의 용비지다. 항상 개방이 되지 않고 묵인하에 출입했으나 지금은 출입이 전면 금지되어 몹시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