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평호 신선봉 순환 둘레길

by 길벗


한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을 찾아다니며 오른 적이 있다. 그중 한 곳이 청평 호반에 산 그림자를 드리우며 산자수려한 풍광을 만들어내는 울업산 신선봉(381m)이다. 2013년과 2020년, 서로 다른 코스로 두 차례 올랐다. 오를 때는 진땀을 흘리고, 내려올 때는 로프도 계단도 없는 가파른 경사에 미끄러질까 식은땀을 꽤나 흘렸다.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멋진 조망에 이끌려 언젠가 다시 찾게 되지 않을까 싶던 산이다.



그랬던 곳을 2024년 가을에 다시 찾았고, 그제(4월 24일) 또다시 찾았다. 두 번 모두 정상까지 오르지 않고 산 허리 아래로 조성된 둘레길을 걸었다. 7km 떨어진 물미 연꽃 호수 둘레길을 한 시간 걷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 신선봉과 짙푸른 청평 호수를 보는 순간 발길을 멈출 수 없었다. 등산화로 갈아 신을 겨를도 없이 그대로 올랐다.



청평호 신선봉 순환 둘레길. 정상까지의 등산로보다는 훨씬 양반이겠거니 했지만, 같은 신선봉 핏줄인지라 도긴개긴, 무척이나 힘들었다. 3.3km의 둘레길을 걷는 데 한 시간 반이 걸렸다. 이 가운데 30분 정도는 룰루랄라 걷기 좋은 오솔길과 편안한 데크길이었지만, 나머지 한 시간은 거의 유격훈련 수준이었다. 길의 표정도 다채롭다. 호젓한 오솔길, 나무 데크길, 낙석 방지를 위한 터널형 구간, 완만한 계단길, 그리고 로프에 의지해야 하는 가파른 '지옥의 계단길'까지 이어진다. 초반 30분 이후부터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쉼 없이 반복된다. 오히려 계단길이 더 나은 편이다. 마사토 위에 낙엽이 덮여 있어 발밑이 꽤 미끄러웠다. 산이 마치 꿈틀거리는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아이젠은 겨울뿐만 아니라 이럴 때도 유용하단 생각이 들었다. 가장 힘든 구간은 수변 데크길에서 1전망대까지의 0.5km. '계단 지옥'이다. 그러나 1전망대에 다다르면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말을 절로 실감하게 된다. 저 멀리 높은 산과 유장한 북한강 물길이 발아래로 시원하게 펼쳐진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큰 산과 큰 강을 발아래 품기도 한다.



과장에 능했던 우리 조상님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날 내가 흘린 땀으로 청평호의 수위가 조금은 올라갔으리라. 신선봉과의 몇 번의 인연 끝에 나름의 교훈도 얻었다. '신선봉'이라는 이름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 물가의 산 높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 그리고 둘레길이라고 결코 만만하게 봐선 안 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이번이 마지막이라고는 더 이상 말하지 못하겠다. 신선봉은 알면서도 번번이 당하게 되는 산이다. 그래도 모처럼 체력 테스트를 한 셈이고, 결과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그제 사진과 함께 2년 전 가을 사진도 일부 덧붙인다.



이날 코스는 이렇다. 청심빌리지 옆 천상현의천상가평멋집 주차장 - 도로변 소공원(0.3km/5분) - 오솔길 따라 임도 삼거리(0.7km/15분) - 수변 데크길(0.9km/20분) - 1전망대(0.5km/20분) - 주차장(1.8km/40분). 정리하자면 청심 빌리지 인근 소공원에서 1전망대까지 2.8km에 60분, 이후 주차장까지 1.6km에 40분이 소요됐다. 전체 왕복은 약 4km, 1시간 40분 정도 걸렸다. 비교적 수월하게 걷고 싶다면 1전망대 오르는 계단길 앞에서 돌아오는 코스를 추천한다. 편도 2km에 30~40분 정도면 충분하다.

도로변에서 담은 둘레길 초입. 오른쪽은 가평 크루즈와 특정 종교 시설.
본격적인 둘레길이 시작되는 소공원. 이 동네는 지금 겹벚꽃이 한창이다.
산세가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는 암벽. 그 아래로 낙석 방지를 위한 터널식 데크길이 보인다.
북한강이 청평 댐에 갇히기 직전이라 은인자중하는 모습이다.
1전망대. 여기서 다음 행로를 선택하면 된다. 온 길로 되돌아갈 것인가, 다른 길로 되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정상으로?
1전망대에서의 조망


아래 사진은 2024년 10월 30일자.


울업산 신선봉 등산 코스

울업산 신선봉 등산 코스는 다음과 같다. 1전망대에서 정상까지는 1.6km. 누구나 한 번 도전해 볼까 싶은 짧은 거리다. 하지만 가파르고 미끄러운 산길이 물결처럼 요동을 친다. 겨우 다 올랐다 싶으면 안 보이던 봉우리가 두더지 게힘하듯 벌떡 일어서거나 갑자기 툭 튀어나오기를 몇 번씩이나 거듭한다. 오르다 보면 내려갈 길이 더 걱정돼 중도 포기를 염두에 두다가도, 올라온 게 아까워 결국 자신이 자신을 끌고 어렵사리 힘겹게 정상에 오르게 된다. 신선봉도 그렇지만 둘레길도 알려지지 않아 인적이 아주 드문 편이다. 2년 전 둘레길에서는 단 한 명의 산객을 만났고, 이번에는 끝내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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