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나무도 진달래도 꽃피우기 전인 이른 봄날이었다.
막히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길을 탔다.
길은 구불구불 고갯길을 넘어 신호등도 없는 삼거리에서 갈라졌다.
군내버스가 오가는 곳인 듯 버스 표지판과 서너 채의 집이 있었다.
조붓한 길 어귀에 얼기설기 엉성하게 쓴 절집 팻말이 눈에 확 들어왔다.
절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산으로 치자면 '청계산'이나 '청량산'만큼이나 그럴듯한 이름이었다.
무슨 인연인지 쇠붙이가 자석에 이끌리듯 거의 반사적으로 핸들을 돌렸다.
한 삼백 미터쯤 시멘트길이 연결되나 싶더니
곧이어 경운기가 다닐 만한 울퉁불퉁 마찻길이다.
봄기운이 꼬무락거리는 메마른 계곡 따라 덜컹덜컹 십 분은 들어간 것 같다.
응달엔 녹다 만 눈이 쌓여 있었고 바람은 잠잠했다.
아내는 되돌아가자 성화였지만 차를 돌릴 만한 공간도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고속도로의 소음이라도 씻어내고 향 내음이라도 맡고 가야지 싶었다.
때론 우연하게 찾은 곳에서 의외의 풍경을 만나지 않았던가.
절집은 일주문도 천왕문도 없이 무사통과다.
그 흔한 탑도, 공덕비도 없고 당우라곤 대웅전과 요사채 하나.
무슨 업보인지 감나무 우듬지에는 여전히 반쪽자리 홍시 몇 개가 매달려 있었다.
요사채도 오래전 화전민이 살았음직한 폐가를 고친 듯 궁벽한 살림살이다.
스님은 큰절에 가셨나, 불경소리도 목탁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주련 하나 붙어 있지 않은 대웅전 난간에는
적막 고요를 쓸어냈을 빗자루 하나 면벽 수행 중이고
요사채 툇마루엔 봄 햇살만이 가득했다.
포행 하듯 경내를 가앙가앙 거닐고 있는 고양이와
댕그랑댕그랑 풍경만이 주인 없는 절집의 풍경을 그윽하게,
아니 스산하게 해주고 있었다. 빈 산에 빈 절이었다.
객의 그림자 소리라도 들릴까, 도둑고양이처럼 발맘발맘 스며들었다가
의지가지없는 나그네는 카메라 셔터 소리도 내지 못하고
허위허위 잰걸음으로 절을 나섰다.
다시 삼거리 마을. 인적도 없다.
겨우 햇빛 한 자락 깔려 있는, 간판이라곤 '담배' 밖에 없는 낮은 기와집 창문 밖에는
버스 시간표와 함께 '막걸리 쏘주 안주 일절'이라고만 쓰여 있다.
그 허름함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가 정겨워 안으로 들어섰다.
라면과 과자봉지 대여섯 가지가 놓여 있는 진열대와
드럼통 위에 놓인 둥근 양철 테이블 하나가
이 집의 이용 가치를 말해주는 듯했다.
주인장은 상가(喪家)에 가셨나,
성가시게 웬 길손이냐는 듯 꼬마가 데면데면한 표정으로 객을 맞는다.
상표가 낯선 막걸리 하나 꺼내 혹시 두부 같은 게 있냐 물었더니
먹다 남은 찬밖에 없단다. 라면 둘, 그리고 보시기에 김치와 묵은 나물 두 가지.
막걸리와 라면을 다 먹을 즈음 버스가 도착하고 곧이어 스님 한 분이 안으로 들어섰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근엄한 표정이 오십은 족히 넘어 보였다.
이것저것 고를 것도 없지만 스님은 자연스레 과자 몇 봉지를 손에 쥔다.
절집과 마을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사는지 값도 치르지 않는다.
순간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부처님께 경배도 못 올리고 왔는데,
스님한테 막걸리 한잔 권하는 게 맞을 성싶었다.
스님도 목이 마르신 걸까, 좀체 나서질 않는다.
아마 우리가 어서 떠나기를 기다리는지도 모를 일.
빈 절까지의 헛걸음에 대한 보상심리인지
스님에게 뭐라고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
하나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막걸리 한 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스님의 반응이 두려워서였다.
시나브로 짙어가는 어스름에다 아내의 채근까지 더해
어찌어찌하다 번뇌만 그대로 둔 채 다시 길을 나섰다.
꼭 뭔가를 놔두고 온 것처럼 가끔 그 절집과 가겟집이 머릿속을 맴돈다.
저녁 예불 타종 소리만큼 긴 여운이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절집의 적막한 풍경, 스님에게 권하지 못한 막걸리.
다시 그 절과 인연이 닿을 수 있을까.
사월 초파일엔 연등이 몇 개나 불을 밝힐까.
쇠락하는 마을과 함께 나처럼 파적(破寂) 중일 어느 산사를 심심 파적 삼아 떠올려본다.
심심 파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