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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작품 : <천지창조>,<최후의 심판>

by 길벗


서양의 종교화는 감동 그 이상이다.

화려하고 장엄한데다 종교적 아우라까지 넘쳐

작품 앞에 서면 예수님이나 성모 마리아님을

실제 알현하는 듯한 압도적인 경이로움을 느끼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특히 성당의 저 높은 천장에 그린 천장화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듯싶다.

전 세계 가톨릭의 총본산인 바티칸에는 시스티나 성당이 있다.

교황이 주로 머무는 곳이자 교황 선출 투표(콘클라베)가 열리는 곳으로

르네상스 회화의 보고로도 유명하다.

이곳에 르네상스 전성기를 대표하는

미켈란젤로(1475~1564)의 걸작도 만날 수 있다.

그는 30대 중반에 <천지창조>를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렸고,

그로부터 20여 년 후 성당의 제단 뒤편에 <최후의 심판>을 그렸다.


<천지창조>로 널리 알려져 있는

미켈란젤로의 역작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보자.

미켈란젤로는 괴팍하기로 유명한 율리오 2세 교황의 무모한 명에 따라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프레스코(Fresco) 화를 그리게 되었는데.

프레스코화는 축축하게 젖은 석고 위에 그림을 그리는 기법으로

석고가 굳어버리면 그릴 수 없어 아주 빠른 속도로 그려야 하고

수정도 할 수 없는 고난도의 중노동이다.

누구나 상상할 수 있듯 천장에다 그림을 그리는 건

거의 형벌에 가까운 작업이었다.

십여 미터나 되는 발판 구조물 위에 올라서서 위를 올려다보며

4년간을 작업해야 했는데 천장은 평평한 게 아니라 둥근 곡면이니

어려움은 상상 이상이다.

목, 어깨, 허리 통증과 시력 저하에다 위에서 흘러내리는 물감 때문에

얼굴과 온몸이 물감 범벅 상태인 것은 자명하다.

한 사람만이 겪은 형벌이 아니다.

수십 명에 달하는 조수들 중 작업대에서 추락하는 이도 있고

죽는 사람까지 있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의 집념 어린 예술혼으로 탄생한 <천지창조>와 <최후의 만찬>.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그려 보면

손이 절로 가슴으로 가 성호(聖號)를 긋게 된다.

SE-0e66bd3d-a0eb-40d7-99a7-e614343295b3.jpg?type=w1 시스티나 성당 회랑의 천장화
SE-af2d805e-8172-499c-9f66-c67392e1c3ff.jpg?type=w1 시스티나 성당의 내부
SE-2ca54eb9-5edb-49db-8674-ed050ac6beb0.jpg?type=w1 미켈란젤로, <천지창조>, 1508~1512, 시스티나 성당

본래 이름은 <시스티나 천장화>이지만 중앙에 있는

'천지창조'의 그림이 가장 알려져 있기에 <천지창조>라 불리고

그 외 '아담의 창조'라는 별칭도 있다.

아담(왼쪽)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신(오른쪽)을 그렸다.


SE-de5757d1-06d3-47c6-861a-4a9886e6a134.jpg?type=w1 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천장화>, 1508~1512, 41.2x13.2m, 시스티나 성당


SE-7521c125-926f-407f-a67a-13010f9e70c0.jpg?type=w1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1536~1541, 13.7x12m, 시스티나 성당

이런 생각도 든다.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작품을

인간이 만들었기에 형벌에 가까운 고초를

겪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대작들은 그 이면에

미처 생각지 못한 수고와 희생이 따른다는 것.

범위를 넓혀 보면 만리장성을 쌓기 위해

얼마나 많은 민초들이 다치고 죽었을까.

앙코르와트와 마추픽추와 피라미드는 또 어떻고.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의 문화유산이 비록 소박하지만

그래도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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