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마을에는 예외 없이 덩치 큰 나무가 서 있다. 대개 느티나무나 은행나무 또는 수형이 독특한 팽나무인데 어떤 수종이든 한여름에는 시원한 그늘막을 만들어주고 또 태풍과 비바람 막이도 되어주는 고마운 나무다. 신령스럽기도 한 이 나무들을 당산나무 또는 정자 나무라고 일컫는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도 팽나무가 있다. 그것도 완전 직각으로 굽은 모습이 볼 때마다 내 할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경남 거창이라는 산골 마을에서 자식과 손주들을 위해 한평생을 다 바치신 할머니이시다. 할아버지가 출장 중 빨갱이 총에 맞아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뜨신 후 할머니는 장남인 내 아버지와 함께 삼촌 고모 등 팔 남매를 거두셨고 그 와중에도 손주인 우리 사 남매를 끔찍이 아끼셨다.
우리는 고향을 떠난 후로도 방학 때나 휴가 때 꼭 할머니를 찾아뵙곤 했는데 다정도 병이셨던 할머니는 갈 때마다 반가움에 눈물부터 보이셨다. 손주들을 위해 마당에서 기르던 닭의 목까지 직접 비틀기도 하셨고, 우리가 떠날 때는 멀리 신작로까지 나오셔서 돈 한 닢 찔러주시며 눈물을 글썽이곤 하셨는데 돌아가신 지 근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모습을 떠올리면 눈가가 촉촉해진다.
내가 직장에 들어가고 난 뒤 어느 가을날 휴가를 내어 할머니를 찾아뵈었다. 뵌 지 한 1년이나 됐을까, 그새 할머니는 폭삭 늙으셨다. 등은 더 굽어져 거의 땅과 수평을 이루다시피 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 많은 식솔들을 건사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정지를 들락날락하셨고, 매일같이 닭똥을 치우셨고, 한겨울에도 빨래하러 봇도랑에 나가셨고, 찬거리를 위해 오리길 시장과 텃밭을 수시로 찾으셨고, 가족들 보양을 위해 미꾸라지와 메뚜기를 잡으러 여섯 마지기 논두렁을 누비시기도 했다. 언제 마음 놓고 허리 한번 펴실 수 있었을까, 자식과 손주들의 삶과 맞바꾸다시피 한 할머니의 휘어진 등은 가장 슬픈 곡선이었다.
지지대에 의지한 채 땅을 경배하듯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아파트의 팽나무, 조상 대대로 뿌리내리고 살던 정든 터전을 떠나 땅 설고 공기 나쁜 대도시 아파트에 갇혀 시름시름 앓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다. 할머니는 80년 넘게 사셨던 고향땅을 다시 밟아 보시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 하셨는데 돌아가신 후에야 고향땅에 누우실 수 있었던 것이다. 평생을 굴곡진 수형과 무성한 이파리로 사람들의 당산나무 역할을 톡톡히 했던 고목에서 연민의 정이 느껴지는 까닭은 바로 내 할머니, 우리 할머니의 삶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자손들을 위해 늘 아래만 보는 삶을 사신 할머니가 이젠 천국에서는 허리 꼿꼿이 펴시고 평안하게 잘 계시면 좋겠다. 굽은 팽나무에서 할머니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할머니가 천국에서도 자손들을 굽어보시는 게 아닐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