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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 둘레길

by 길벗


수원 하면 '수원 화성'이다. 정조 때인 1794년 완공된 수원 화성은 우리나라 성곽 문화의 백미로 꼽힌다. 수원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성도 빼어나다. 성곽길이라고 밋밋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길의 표정은 의외로 다채롭다. 시종일관 딱딱한 돌길이지만 걷기 좋은 숲길도 있다. 벚나무와 철쭉을 비롯 꽃구경에도 그만이다. 사철 푸른 소나무가 호위무사처럼 성곽길을 에워싸고 있어 인공적이면서도 소쇄한 느낌이 그윽하다. 거기에다 파도치듯 오르내리는 팔달산을 품고 있어 수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4월 28일 오전 방화수류정을 출발, 화홍문 장안문 화성장대 화양루 남포루 팔달문 동남각루 창룡문 연무대를 거쳐 방화수류정으로 원점 회귀하는 5.7km의 수원 화성 둘레길을 걸었다. 2시간~2시간 반 정도 걸린다. 전체 코스 중 놓칠 수 없는 으뜸 명소는 군사 지휘소였던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다. 그 아래로 능수버들이 에워싸고 있는 아담한 연못인 용연(龍淵)까지 거느리고 있어 운치와 풍류를 즐기는 정자 역할도 겸하지 않았을까 싶다. 군사 목적으로 건축된 성곽길이 지금은 문화재이면서 관광 자원으로 남아 많은 이들의 걷기 코스이자 휴식 장소가 되었으니 둘레길을 걷는 내내 정조 대왕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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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수원의 행정청은 지금의 수원에서 남쪽으로 약 8㎞ 떨어진 화성군(현 화성시) 태안면 송산리의 화산(花山) 아래 있었다. 정조는 양주군 배봉산에 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이곳으로 이장하면서 수원읍과 민가들을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팔달산 아래 지금의 수원으로 옮기고 읍명을 화성(華城)이라 했다. 방화수류정과 가장 가까운 주차장은 연무 공영주차장이다. 걸어서 1분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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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수류정.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는 뜻의 방화수류정은 중국 송나라 때의 시인인 정명도의 시 "운담풍경근오천 방화수류과전천"(雲淡風輕近午天 訪花隨柳過前川, 구름 개어 맑은 바람 부는 한낮 꽃 찾아 나선 길/버드나무 따라 앞개울가를 지나네)에서 딴 것이라 전한다.

정자 현판은 원곡 김기승(原谷 金基昇)이 쓴 글씨다. 방화수류정은 보물 제1709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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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연(龍淵). 후대에 조성한 연못인 줄 알았으나 <화성 성역의궤>에 용연이 반달처럼 생겼고, 용머리처럼 생긴 용두 바위는 물고기를 잡는 조대(釣臺)로 쓸 만하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용연에 비친 달이 떠오르는 모습은 화성에서 보아야 할 아름다운 경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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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851ce02d-af5b-4165-bcea-100b84093e70.jpg?type=w1 수원 화성 북쪽 수문인 화홍문(華虹門).
SE-157ad215-deb7-4e1d-a162-6d9db37a3745.jpg?type=w1 화홍문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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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86214b28-1b9a-44f7-a531-74917d6bd0eb.jpg?type=w1 팔달산 오르는 길. 숲길도 있고 성 바깥길도 있다.
SE-113ab29d-7e33-46aa-9f41-52cadd3ed60c.jpg?type=w1 성 바깥 길
SE-fc0cf672-d7e0-45fb-a648-e0b161824158.jpg?type=w1 서장대(화성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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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9430d40-a232-4672-b171-b47216874fe1.jpg?type=w1 서장대 쪽에 서장대 안내소와 매점, 화장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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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은 돌로 쌓아왔지만 수원 화성에서 처음으로 벽돌을 사용했다. 성벽에 방어시설을 설치할 때는 벽돌을 사용했고, 순수한 성벽은 돌로 쌓았다. 성벽은 지형에 따라 높낮이의 차이가 있어 높은 곳은 6m, 낮은 곳은 4m다. 옛날 쌓았던 제법 큰 돌과 최근에 쌓은 말끔한 돌이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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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문에서 남포루를 거쳐 서장대로 오르는 길은 아주 가파르다. 반대 방향에서 올라 이 계단으로 내려오는 게 무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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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문. 수원 화성은 도심을 통과한다. 어디서든 성의 안팎으로 드나들 수 있고 어디서든 음식점이 가까이에 있다. 사통팔달이다. 성곽길은 여기서 잠깐 도심의 도로를 통과한다. 남문시장과 지동시장을 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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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임진왜란 때 재상을 지냈던 서애 유성룡(西厓 柳成龍, 1542∼1607)의 <징비록>을 참고하고 정약용이 주창한 성설(城說)을 설계의 기본 지침으로 삼아 화성을 축성했다. 성안에 행궁을 설치하는 등 요즘으로 치면 신도시를 건설한 것이다. 그리하여 겨우 5∼6호에 지나지 않아 광막한 벌판이었던 수원은 어느 날 갑자기 화려한 도시로 탈바꿈했고, 사통팔달의 교통 중심지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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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b5e297d-0067-462f-b1f8-a2cc0f22cd4e.jpg?type=w1 팔달산과 서장대(화성장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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