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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 마크 트웨인 장애 · 스탕달 효과

by 길벗


누구나 한 번쯤 보았을 법한 <최후의 만찬>이다. '무려'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작품이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석학으로 <모나리자>를 그린 화가이자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음악가, 지리학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던, 인류 역사를 바꾼 10명의 천재 중에 가장 창의적인 인물 1위로 꼽혔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가로 880cm, 세로 460cm의 이 대작 앞에 서면 작가의 이름을 확인하고 아! 하는 감탄사와 함께 그림에 집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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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1490년, 젯소에 템페라, 880x460cm,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아 성당


대개의 사람들과는 달리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을 쓴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이 작품을 보고 나서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등장인물들은 누추해 보이고 아파 보이고, 도무지 그림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 뉴욕 타임스의 기자가 이를 두고 마크 트웨인 장애(Mark Twain Disorder)라는 이름을 붙였다. 유명한 예술 작품을 보고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반대로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이라는 말도 있다. 프랑스의 작가 스탕달이 1817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에서 아름다움의 절정과 희열을 느끼고, 성당을 나서는 순간 심장이 마구 뛰며 곧 쓰러질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충격에서 벗어나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고 한다. 스탕달 신드롬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예술작품을 보았을 때 순간적으로 느끼는 각종 정신적 충동이나 분열 증상을 일컫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이런 용어는 자주 쓰고 싶지 않지만, 베블런효과라는 것도 있다. 가격이 오르는 데도 과시욕이나 허영심 등으로 인해 수요가 줄어들지 않는 현상을 일컫는데 미술 부문에서도 적용된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앞에서, 국내에서도 고흐 전시회에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는 것이 비단 그림 자체가 주는 감동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작품이나 작가의 이름값 영향도 상당할 것이다. 때론 유명 작가의 이름만 내세운 채 별 알맹이 없는 전시회에도 관객들이 몰리고 있어 주최 측의 상업주의에 조종당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 때도 있다. 박완서 선생의 수필 중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저게 피카소야?" "응, 저게 바로 피카소야." "별로 좋은 줄도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피카소지."


대가라도 졸작이 있고 무명이라도 걸작이 있을 수 있는데 작품의 질보다 작가의 이름이 더 위세를 떨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무명의 걸작이 사장된다는 점에서 아깝고 안타깝다. 고흐나 이중섭 같은 화가는 습작조차도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름 없는 화가들의 숨은 걸작이 빛을 보는 일은 극히 드물다. 리스트가 베토벤의 곡이 아닌 다른 걸 연주해 놓고 짐짓 "이 곡은 베토벤 것이오"라고 소개했더니 안 나올 박수가 우레처럼 쏟아지더라는 일화도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미술이든 음악이든 전문가의 작품 해석이나 창작자의 스펙이 온전한 감상에 별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그들만의 주관과 지식에 의존하지 말고, 이름값에만 매몰되지 말고 내 안의 직관과 상상이 이끄는 대로 스스로의 감성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자유롭게 보고 느끼는 편이 게 더 낫지 않을까. 우리는 누구나 마크 트웨인이 될 수도 스탕달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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