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암 이응노 화백의 작품

by 길벗


고암 이응노(1904~1989) 화백. 여러 매체를 통해 그의 이름 석 자만 알고 있다가 그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건 예산 수덕사를 찾았을 때였다. 수덕사 코앞에 그가 한때 작업을 하던 수덕여관과 바로 옆 <수덕사 선(禪)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만났다. 특히 여관 앞 바위에 새긴 추상화 문양의 암각화는 예사롭지 않은 아우라를 뿜어내며 긴 여운을 남겼고 그 후 미술책이나 전시회를 통해 이응노 화백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유행이던 서구의 현대미술을 따르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화시키거나 혹은 한국적인 것으로 녹여냈다.


이응노 화백은 1904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1922년 동양화가인 김규진에게 전통 회화와 사군자 등을 사사했으며, 1935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서양화를 배웠다. 해방 후 1948년부터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1958년에 프랑스로 건너가 전통적인 한국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며 화단의 인정을 받았다. 1960년대에는 자유분방한 형식의 한지 콜라주를 본격적인 문자추상으로 발전시켰다.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2년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며 '금기 작가' 신세가 되기도 했으나 수감 중에도 종이, 천, 돌멩이, 비닐, 은박지, 밥알과 신문지를 반죽해 많은 작품을 남겼다. 석방 후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 문자 추상에 매진했고 1982년부터 말년을 대표하는 <군상> 연작을 작업했다. 정리하자면 1970년대에는 문자추상을, 1980년대에는 인물 추상인 '군상' 연작을 만들었다. 1983년 이응노는 프랑스로 귀화한다. 동백림 사건에 이어 또 한 번의 누명을 쓴 사건 때문이다. 그러다 1989년 1월, 서울 호암 갤러리에서 그의 전시회가 열렸지만 정부는 여전히 입국을 허가하지 않았고 작가 없는 전시회라는 어이없는 일이 생긴다. 전시회가 성대하게 열린 그날, 파리의 작업실에서 이응노는 심장마비로 쓰러진다. 그는 파리의 많은 거장이 잠들어 있는 페르 라셰즈 묘지에 묻힌다. 모딜리아니 오스카 와일드, 쇼팽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그의 호 고암(顧菴)의 '고'는 고대 중국 화가 고개지의 성을 따왔고 '암'은 집을 뜻한다.


* 참고 서적 : <다시 보다, 한국 근현대 미술전/소마미술관>/정우철, <미술관 읽는 시간>


SE-9fe7c15c-5950-46b5-a4d9-ea4985cd8b17.jpg?type=w966 수덕여관

수덕여관. 예산 수덕사 바로 앞이다. 이응노가 1944년 구입했다가 1959년 프랑스로 건너가기 전까지 작품 활동을 했던 곳이다. 가수 윤심덕과 함께 한말 3대 신여성으로 불리던 화가 나혜석 역시 파경 후 불제자가 되기를 원했으나 만공 스님으로부터 거부당하자 이곳에 머물며 그림을 그렸다. 수덕여관 바로 옆 현대식 건물은 수덕사 선(禪) 미술관이다. 2010년 개관된 우리나라 최초의 불교 전문 미술관으로 고승들의 선묵 · 선서화, 이응노 화백을 비롯한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들이 내외부에 전시돼 있다.


SE-75aa07e8-a146-4072-8ee8-f7d5525cca19.jpg?type=w966 수덕사선미술관 경내에 있는 암각화

이응로의 암각화는 1969년 동백림 사건으로 귀국했을 때 고향산천에서 삼라만상의 성함과 쇠함을 추상화하여 표현한 작품이란 설명이다. 바위에 생명을 불어넣음으로써 옥고를 치른 그의 지친 심신에도 새로운 생명을 불러 넣었으리라 짐작된다.


SE-ca0ecc29-de82-4e78-9582-0f815b0cd41d.jpg?type=w966 <거리 풍경-양색시>, 1946, 한지에 수묵담채, 50.3x66.5cm
SE-54fc809b-6d70-4346-8fc9-bd905d3c38c6.jpg?type=w966 <취야>, 1950, 한지에 수묵담채, 40.3x55.3cm
SE-04644d99-d2d8-4c6a-81a5-61dbc6860a6b.jpg?type=w966 <취야-외상은 안뎀이댜>, 1950년대, 종이에 수묵채색, 42.0 x 55.0cm
SE-6d09a6a0-4bd3-49df-8cda-b2bd4692f82d.jpg?type=w966 <꽃장수>, 1950, 한지에 수묵담채, 47.2x55.3cm 이응노미술관
SE-c44aa376-990e-42d1-9097-3907d6c95c20.jpg?type=w966 <영차 영차>, 1950, 한지에 수묵 담채, 24.5x44cm
SE-d4853b81-9b6a-42f8-a052-7393b55724de.jpg?type=w966 <스위스의 아침>, 1968, 한지에 수묵담채, 94x53cm, 이응노미술관
SE-f8d8da29-1bb2-4f05-b8aa-8d5344dbabef.jpg?type=w966 <피난>, 1950
SE-0f84bdf0-0625-4d03-89e7-af9e9a1fca45.jpg?type=w966 <원숭이>, 1977



이응노 화백이 1970년대에 매진했던 문자추상, 그리고 1980년대에 집중했던 인물 추상인 '군상' 일부를 소개한다.

SE-cbe23ecd-7e57-43ef-b470-52138faad10b.jpg?type=w966 <구성>, 1965, 108x62cm, 캔버스에 종이 콜라주, 웅 갤러리

<구성>. 그림이 글자처럼 보인다고 하여 문자추상이라고 불렀는데 이응노는 1960년대 중반부터 문자를 활용한 추상 작업에 몰두하며 동양의 예술 정신과 표현 기법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추구했다.

어린 시절 배운 서예를 토대로 한자의 획과 점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자유분방한 구성, 운필이 번지는 우연적인 효과를 활용해 추상의 가능성을 탐구했다. 서구 현대미술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동양의 미학을 담은 콜라주 작품과 '문자추상' 등이 탄생했고 현재까지도 그만의 아이덴티티가 됐다.

SE-e359d630-3b7c-478a-b0c2-6100f9e886f8.jpg?type=w966 <구성>, 1969, 한지에 채색, 133x68cm
SE-e63aea09-f60c-4b61-b782-84d0a58e69dc.jpg?type=w966 <구성>, 1973, 123x73cm, 리넨에 잉크, 이응노 미술관


<군상> 시리즈는 그의 말년 10년에 걸쳐 그린 것으로 광주민주화운동 소식을 듣고 그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모여 세상이 긍정적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그의 마음의 표현이라고. 멀리서 보면 개미 같기도 하다. 모두가 각기 다른 동작을 취하고 있다. 춤추는 사람, 웅크려 있는 사람, 뛰는 사람......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보인다.

SE-0861a95a-75db-424c-a1d1-399411b51300.jpg?type=w966 <군상>, 1984, 종이에 수묵, 채색, 135 x 70cm
SE-16e95e2f-e4c0-46da-a361-e55fd04a088b.jpg?type=w966 <인간>, 1986, 종이에 수묵, 140×69cm
SE-f507aab6-5c78-4729-8494-37520445f656.jpg?type=w966 <군상>, 1986, 167x266cm, 한지에 먹
SE-0a3a6aa4-a9c4-4b74-92fe-fc502e779afe.jpg?type=w966 <군상>, 한지에 수묵담채, 77×29cm
SE-a8dfdeb0-75f9-441d-83e6-77440cf92236.jpg?type=w966 <군상>,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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