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삼, <묵화>

by 길벗


묵화(墨畵)

- 김종삼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의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단 여섯 줄의 글 속에 어둑해질 무렵 어느 외딴집

외로운 할머니와 소의 풍경이 그대로 보인다.

적적함을 달랠 길 없는 할머니, 그리고 할머니의 반려가 되어주는 소.

제목 또한 간결하고 절묘하다. 묵화(墨畵).


사람 밥보다 소가 먹을 여물부터 먼저 챙기고

마당으로 날아든 풀씨 하나 뽑아내지 않고 물까지 주던

우리의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으로

모든 이들, 모든 것들을 따듯하게 품으며

함께 살아가면 좋겠다.

SE-918aef7a-e40f-4e11-9f29-60ddf89a3622.jpg?type=w1 고희동(1886~1965), 노농우경(老農牛耕: 늙은 농부가 소로 밭을 갈다), 견본 담채, 28.5x15.6cm, 간송미술관

이 시를 읽다 보면 미국의 여류 소설가

펄벅 여사(1892-1973)가 떠오른다.

‘대지(大地)’라는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선교사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는

외국문화의 신비함에 이끌려

낯선 나라를 많이 여행했다.

그런 그녀가 1960년 초겨울

경주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펄벅 여사는 들판에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한 농부가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데

농부는 무거운 볏단을

자신의 지게에 멘 채 걸어가고 있었다.

미국의 농부라면 소달구지 위에 볏단을 올리고

자기도 올라탔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 농부는 왜 볏단을 등에 지고 가는 것일까?

펄 벅은 농부에게 다가가 물었다.

“소달구지에 볏단을 실으면 될 텐데,

왜 그렇게 볏단을 지고 갑니까?”

그러자 농부는 오히려 그녀의 질문이

의아하다는 듯 이렇게 대답했다.

“오늘 우리 소는 종일 밭을 갈았소.

그러니 집에 가는 동안에라도

좀 쉬게 해 주어야 하지 않겠소?

우리나라 농부라면 모두 다 나처럼 생각할 겁니다.”‘

그 말을 들은 펄 벅은 한국이야말로

동물의 힘든 일조차 염려하는

참 아름다운 나라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우리나라의 정가름 풍습에 감동한 나머지,

그녀는 한국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살아있는 갈대’를 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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