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희 <메꽃>

by 길벗


메꽃

- 유은희(1964~)


버려진 지게로 메꽃이

뻗어가더니

이내 이마를 짚고

부러진 다리를 감싼다

고구마 순도 볏짚도

산 그림자도

더는 져 나를 수 없는

무딘 등을 쓸어내린다

지게의 혈관이 되어

온몸을 휘돈다

한쪽 팔을 담장 높이 치켜들고는

지게의 뼛속까지 똑똑

햇살을 받아내고 있다

산비탈 마당가

메꽃과 지게는

하나의 심장으로 살아간다

반신불수의 지게에서

메꽃, 핀다

흰밥 수저 가득 떠서

아, 하고 먹여주는 늙은 입과

아, 하고 받아먹는 늙은 입이

활짝 핀 메꽃이다


- 이 시를 음미하다 보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측은지심이다.

할아버지의 지난한 삶과 함께해 온 지게.

그리고 이제는 늙고 낡아 지게처럼

반신불수가 되다시피 한 노부부.

모두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킨다.


"아, 하고 먹여주는 늙은 입과

아, 하고 받아먹는 늙은 입이."

이 마지막 부분에서 가슴 뭉클해지는

절정의 측은지심과 함께

왠지 안도감 같은 게 느껴진다.

노부부는 "부러진 다리를 감싸고 무딘 등을 쓸어내리"며

서로가 서로를 감싸안는 메꽃인 것이다.

늙어 거동이 힘들더라도 부부가 같이 해로하며

서로가 서로의 반이 된다면 이 또한 축복이리라.

SE-01339355-2e25-44e8-b80c-b4b4191fb962.jpg?type=w1 이상원, <동해인 The East Sea People>, 한지 위에 먹과 유화 물감, 130x170cm,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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