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이적 표현물'로 찍혀 수난을 겪은 작가와 작품들이 있다. 북한을 찬양했다는 것인데 당시 국가보안법에 저촉되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한국 민중미술을 대표해온 화가 신학철(1944~)도 그중 하나다. 그는 1980년대에 <한국 근대사> 시리즈, 90년대에는 <한국 현대사> 시리즈 등 40여 점을 연작으로 발표하여 우리 민족이 겪었던 수난의 역사를 캔버스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대표작은 1987년 작품 <모내기>다. 100호 크기의 대작으로, 한반도 지형을 닮은 화폭에다 그림 위쪽은 백두산 아래서 춤추고 음식을 먹으며 풍성한 수확에 행복해하는 농부의 모습을 그렸고, 아래는 힘들게 일하고 있는 사람들과 외세를 상징하는 코카콜라, 양담배 그리고 포탄과 탱크 등을 바다로 쓸어 넣는 농부의 모습을 담았다. 위아래가 현격하게 대비되는 그림이다. 경찰은 이 그림이 북한을 찬양한 것으로 보고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압수하고 신학철은 3개월 동안 구치소에 수감되면서 10년 넘게 미술 표현의 자유와 검열 문제에 대한 논쟁을 일으켰다. 1999년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10월에 선고유예 2년 형이 확정됐다. 군사독재 정권도 아닌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시절이었다.
<유홍준 잡문집,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에 '모내기'를 비롯한
신학철의 작품과 유 교수의 해설이 실려 있다.
"신학철은 리얼리즘의 화가다.
그러나 그는 외형적인 사실을 넘어서
대상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내용 내지 정신까지를
그려내려고 노력한다.
때문에 신학철의 그림에는 겉으로 나타난 것
이면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이를테면 황혼이 깃든 들녘에 앉아 있는 소 한 마리는
단순히 농촌의 서정으로 소를 그린 것이 아니라,
저녁에 여물 먹은 것을 되새김하고 있는 소의 모습을
마치 승려가 참선을 하는 모습으로
의인화해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