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1941~2022). 한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빼곡하게 채울 수 있는 시인이자 화가다.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그는 <토지>의 작가 박경리의 사위이기도 하다. 그는 60~70년대 운동권에서 알아주던 인물이었다. 1964년 한일회담 반대 시위로 투옥되고 1970년 정치인과 재벌 · 관계의 부패와 비리를 고발한 <오적 五賊>을 발표하여 옥살이를 하고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등으로 사형까지 선고받았다. 1980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생명운동을 벌이는 데 힘썼다. 1991년 분신 정국 당시 김지하는 조선일보에 쓴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라는 글로 그들의 죽음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보수 정권을 돕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면서 많은 이들의 비난과 원성을 사게 되었다. 2012년 대선에서는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기도 했다.
이상은 흔히 알고 있는 김지하의 정치 이력이다. 그는 3권의 시집을 낸 시인으로도 유명하다. 필명은 '지하'(地下)였는데, 이것이 굳어져 이름처럼 사용하면서 이름을 지하(芝河)라 하였다. 본명은 김영일이다. 김지하에게 화가의 타이틀도 빼놓을 수 없다. 문인 화가 그의 대표작이다. 유홍준 교수의 <유홍준 잡문집,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를 통해 그의 문인화 몇 작품을 감상했다. 그림과 간단한 해설은 책에서 인용했다.
"김지하는 80년대 초 후배인 춤꾼 채희완, 소리꾼 임진택, 경제학자 박현채에게 각각 걸맞은 삽화풍의 인물화를 그려주었다. 각가의 그림에 특유의 해학이 번뜩인다. 1980년 7년간의 긴 감옥생활에서 풀려나 원주에 칩거하던 시절, 김지하는 무위당 장일순 선생에게 그림을 배우면서 난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당시 김지하는 묵란에 의미 있는 화제(畵題)를 달아 벗들에게 선물하였다. 1974년 김민기에게 보낸 풍란에는 "바람에 시달릴 자유밖에 없는 땅에서 피어나는 기묘한 난"이라는 화제가 쓰여 있다."
박현채 선생이 부릅뜬 눈으로 파리채를 휘두르는데
파리는 선생의 마리 뒤로 날래게 도망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김지하의 마지막 그림이다. 화제로 "이월 보름은 봄이 가깝다"라고 희망을 말하기도 하고, "모란도 갈 길을 간다네"라며 아쉬움을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채색모란도는 화사하면서 아련한 아픔이 동반된다.
김지하는 결국 '흰 그늘'이 서린 모란꽃을 화사한 채색화로 그리다 세상을 떠났다. 묵란으로 시작하여 묵매로, 그리고 달마도로, 또 수묵산수화와 채색모란도로 화제를 옮기며 생애 후반 붓을 놓지 않은 김지하는 실로 위대한 현대 문인화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