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할아버지의 선행

by 길벗


지하철에서의 목격담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가 엄마와 함께 탔다.

앉을 자리는 없고 비교적 여유로운 노약자석 앞에 섰다.

아이가 몹시 힘든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거의 주저앉다시피 한다.

이를 보고 머리 희끗한 할아버지가 자리를 양보하신다.

엄마는 아이를 만류하지도 않고 아이는 당연하다는 듯 노약자석을 차지한다.

아이가 할아버지를 머쓱한 듯 올려다보자 할아버지가 하시는 말씀.

"괜찮아, 네가 앉아도 되는 자리야."

그러고는 할아버지는 저 멀리 가서 서 계신다.

몇 정류장 뒤 할아버지 할머니 들이 우르르 들어와 노약자석 쪽으로 몰려오니

아이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일반석 쪽으로 간다.

거기서도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일반석에는 젊은 사람도 많은데 이번에는 할머니가 자리를 양보하신다.


사실 나도 그 순간 갈등했다.

나이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입장에서

힘들게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게 미안하고 불편했었다.

나이 많다고 늘 다리 아프고 힘든 것도 아니고

젊다고 항상 몸 상태가 좋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자리가 있음에도 서서 가는 건

그런 연유가 아닐까란 짐작도 해보곤 한다.

아이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는 순간

품격, 너그러움, 자애로움... 같은 단어들이 떠올랐고

나는 늘 마음속에만 두고 왜 이런 멋진 일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지,

자괴심이 일기도 했다.


나이 든 사람 하면 그저 남을 가르치려 들거나 받으려고만 하고

또 나이 든 거 몰라주면 서럽고 늙은이 취급받는 건 싫어하는

부정적 이미지는 어쩌면 나만의 잘못된 편견이요,

선입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에서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선행은 좋은 가르침으로

내 기억 속에 오래오래 간직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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