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평범한 그림도 보는 눈에 따라 달리 보인다. 정은령 교수의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라는 책에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작품 얘기가 나왔다. 그의 글부터 보자.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도 아니고, 그림에 대한 감식안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 뭐라 설명할 수 없이 내 마음이 가닿는 그림들이 있다. 페르메이르도 언제부턴가 그런 화가 중 하나였다. 아마도 그의 작품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일 것이고, 나 역시 그립에 잡힌 그 소녀의 표정 - 두려워하면서도 저항할 수 없는 어떤 유혹에 다가가는 - 을 좋아하지만, 보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건 다른 그림들이다.
우유를 따르는 여인도, 편지를 읽는 소녀도, 보는 사람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하는 일에 골몰해 있다. 기쁨도 슬픔도 두려움도 한탄도 그 얼굴 위에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세상이 무너진다 해도,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사소하고도 사소한 일을 멈추지 않을 것 같다. 내게 정말로 매혹적인 것은 바로 그림 속 왼편의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다. 우유를 따르는 여인의 고집스럽게 툭 튀어나온 이마, 일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해주는 팔뚝의 근육, 야무지게 접어 올린 앞치마의 풍성한 주름들은 이 빛과 만나서 비로소 '그녀'를 말한다. 편지를 읽는 소녀는 아예 창문을 연 채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 속에 서 있다. 나 아닌 다른 존재, 내가 알 수 없는 세상으로 향하는 창문 곁에 서서, 식사를 준비하거나, 편지를 읽거나 혹은 바느질을 하는 여인들. 일상의 반복을 지탱하는 사소한 일들에 골몰해 있는 듯하지만 이 여인들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피어올랐을지 누가 알겠는가. 머물러 있는 듯 보이지만, 한없이 사소한 일상의 반복을 통해 세상과 타자를 향해 나아가는 여인들. 고요한 그림들을 보면서 나 혼자 그런 상상을 하며 이 여인들의 단아하고 웅숭깊은 의지에 가슴이 쿵쿵거린다."
흔히 작품이 말을 건네온다고들 하지만 이보다 더 작품 해설을 깊이 있게 명확하게 잘 풀어낼 수 있을까. 정 교수의 해설을 접하고 나는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