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거이, <술잔을 들며>

by 길벗


술잔을 들며

- 백거이


달팽이 뿔 위에서 무엇을 다투는가?

부싯돌 불꽃처럼 짧은 순간 살거늘,

풍족한 대로 부족한 대로 즐겁게 살자.

하하 웃지 않으면 그대는 바보.


- 당나라 시인 백거이(772~846)의

<대주對酒/술잔을 들며>라는 시다.

백거이의 자(字)는 낙천(樂天),

만년에는 호를 취음 선생(醉吟先生)이라 하였다.

백거이의 자와 호에 딱 어울리는 글로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술과 시를 즐겼던

그의 면모가 잘 드러난다.


고 정주영 회장도 서재에 이 시를 걸어놓았다고 하는데,

산전수전 온갖 굴곡을 다 겪으며

역사에 남을 만한 커다란 성취를 이룬 인물인데

조금은 의외로 읽히기도 한다.


어쩌면 이런 글을 쓴 백거이도 그렇게 살지 못해서,

희망 사항을 노래한 게 아닐까.

모르긴 해도 정주영 회장이 추구했던 삶도

백거이의 그것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이런 글을 쓰기는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

이런 글을 접함으로써

삶의 결이 좀 느슨해지고 부드러워진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달팽이 뿔처럼 좁디좁은 세상에서

부싯돌 불꽃처럼 짧은 순간 산다는

백거이의 글에 동의한다면

지금 자신을 괴롭히는 모든 것들이

조금은 하찮게, 가볍게 느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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