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했다.
어머니는 전화를 받자마자 내 안부부터 챙기신다.
더위에 잘 지내냐고?
잘 먹고 잘 자냐고?
나는 말씀드린다.
그리 덥지 않고 지낼만하다고.
잘 먹고 잘 자니 걱정 마시라고.
내가 어머니는 어떠시냐고 되물었다.
나도 잘 먹고 잘 잔다.
내 걱정 말라고.
어머니는 여름이면 내 걱정이다.
내가 유독 더위에 약하고
그래서 한여름엔 잠도 잘 못 잔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어머니는 전기값이 아까워
혼자서는 절대 에어컨 못 켠다는 것을.
어머니와 통화하기 전에는 늘 답변을 궁리하고 만들어내야 한다.
때로는 어머니에게 하소연도 하고 싶고 어리광도 부리고 싶지만
사실 그대로를 말씀드리면 크게 걱정하시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하는 것이 최소한의 효도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9년 전 설날 연휴 때 이야기다.
어머니에게 극심한 가슴 통증이 와
즉시 입원하고 수술을 해야 했었는데
어머니는 명절이라고 찾아온 자식들에게
내색을 하기 싫으셨던 것.
참고 참다가 자식들이
모두 떠나자 홀연히 입원하신 적도 있다.
모전자전일까.
나도 작년 초 협심증으로 인한 극심한 흉통으로
응급실 신세를 졌었는데
그때도 응급실에서 아무 일 없이 잘 있다고 했다.
추워도 춥지 않다고 더워도 덥지 않다고
아파도 아프지 않다고...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없는 말을 한다.
할 말을 꾹 참는 것이다.
서로의 목소리만 들어도, 아니 숨소리만 들어도
잘 있는지 못 있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는데
전화상으로는 어머니도 나도 아픈 데 없이
늘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것이다.
그간 어머니와의 숱한 대화를 생각해 보면
어머니와 나는 서로 감추는 것도 참 많고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도 참 많다.
가장 가까운 사이, 가장 사랑하는 사이지만
터놓고 사실을 이야기할 수 없는,
가장 비밀이 많은 사이가 부모 자식 간이 아닐까.
조선 중기의 문인 이안눌(1571~1637)도 부모님께 이렇게 썼다.
부모님께 보낼 편지에
내 괴로움 털어놓으려다가
백발이 성성한 어버이가
걱정하실까 염려하여
그늘진 산속 겹겹이 쌓인 눈이
천 길 낭떠러지 같은데
"올겨울은 봄날처럼 따스합니다"라고
적어 보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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