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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eong Apr 01. 2022

돌봄 일기

늙으신 어머니와 함께 하는 일상

돌봄은 인내력이다(2022.3.21)


"엄마, 셋째 딸이에요. 아침 식사는 하셨어요?"

"오, 우리 셋째 딸 왔냐? 그렇지 않아도 우리 막내딸 소식이 궁금했다."

"엄마 모시러 왔어요. 우리 집으로 가시게요."

"왜? 왔다 갔다 하는 것 싫은데..."

"엄마, 싫어도 가셔야 돼요. 언니가 일이 있어서 집을 비우게 되어서요."

"큰 애야, 어디 가냐?"

"엄마, 저 출장 다녀온다고 했잖아요."

엄마의 맏딸인 큰언니가 그간 엄마를 돌보고 있었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2주간 집을 비우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2주 동안 우리 집에서 엄마를 모시기로 했다.

엄마는 12년 전부터 녹내장을 앓고 계시고 척추 협착증에 퇴행성 관절염을 앓고 계셔서 실내에서도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신다. 시력이 다하여 시각장애 판정을 받으셨고 퇴행성 관절염으로 걸을 없는 상태이니 전적으로 돌봄이 필요한 분이시다.

엄마와 함께 하는 일상은 엄마의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으로 인한 정기적인 내과 진료, 치아 임플란트로 인한 치과 진료, 정형외과 진료 등 종합병원을 순례하는 일이다.

출타를 위해 분주하게 준비하는 언니에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나눈 후, 나는 엄마를 휠체어에 태우고 아파트에서 내려왔다. 엄마를 휠체어에서 자가용으로 옮겨 태우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휠체어를 접어 트렁크에 넣는데 비지땀이 흘렀다. 큰언니의 노고가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에고, 나는 자식들 집에 다니니 좋은데 너희들이 이토록 고생하니 어쩌냐..."

엄마는 신경이 예민하셔서 자식들의 노고까지 챙기느라 염려증 하나가 더해졌다.

엄마는 입맛이나 음식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셔서 식사 준비도 신경을 써야 한다. 나는 가사, 특히 주방일은 젬병이다. 하기 싫은 일 중 하나다. 하지만 엄마가 오시는 날만큼은 신경을 써서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특별히 할 일이 없으신 엄마는 말수도 줄어들어 하루 종일 꾸벅꾸벅 졸거나 텔레비전을 켜 둔 채 의미 없이 바라보는 것이 하루 일과라고 했다. 우리 집에 오셔서도 내가 다른 일을 하는 동안 언니에게 들었던 것처럼 엄마는 텔레비전 앞 소파에 앉아서 졸고 계셨다.

나는 졸고 계신 엄마에게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해 드려야 하나, 생각하다가 장보기를 함께 가기로 했다. 처음에 엄마는 가시지 않겠다고 하셨다. 휠체어를 밀어야 하는 딸에게 고생을 시키는 것은 아닐까 염려해서였다. 나는 기어코 엄마를 설득해서 휠체어를 밀며 함께 마트로 장보기를 갔다. 엄마는 안개 낀 것같은 시력으로나마 사물을 보실 수 있기에 주부구단의 감각으로 야채류와 고기류 좋은 것을 골라주셔서 그걸 사 가지고 왔다.

다른 가게에 들러서 이것저것 사야 할 것들이 있었는데 엄마는 이제 그만 집에 들어가자며 소리치신다.

 나는 한 군데 더 들러야 한다고 엄마를 설득하려 했지만 엄마는 힘드니까 한사코 그냥 집으로 가자고 하셨다. 나는 엄마에게 투덜거리며 휠체어를 집 쪽으로 돌렸다.

 " 엄마 고집은 못 말려!"

"나를 철면피 같은 사람으로 만들지 마라. 자식이 힘들 것 뻔히 알면서 이렇게 휠체어 타고 어디까지 간단 말이냐?"

"힘들지 않다니까 엄마는 왜 자꾸 힘들 거라고 생각하셔요?"

"너 힘들잖아!"

"힘들지 않다고요!"

"그래도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는 거잖아요!"

별것도 아닌 일이지만 엄마의 의견을 따라드려야 갈등은 막을 내린다. 휠체어 타신 내 엄마는 항상 주장이 강하셨고 다섯 자식들을 모두 엄마 뜻에 따르도록 길들이셨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엄마의 큰소리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엄마에게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강하시고 고집 센 분도 이젠 노약자가 되셔서 휠체어에 의존하게 되셨다. 그러면서도 그 고집은 아직 강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나는 엄마가 얄밉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거의 자동적으로 엄마의 뜻을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나이가 들만큼 들었다. 순간순간 지시하시고 고집 센 주장으로 통제하시는 엄마에게 들이받고 싶은 생각이 치밀어 오를 때가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노약자이신 분께 치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강한 생존력이 죽음을 두렵게 하는 걸까?(2022.3.22)


"엄마, 아까 그 약 드셨잖아요!"

"나도 알아. 왜 날 치매환자 취급하는 거냐?"

"누가 치매환자 취급해요? 그게 아니라 같은 약을 과다 복용하면 안 되니까 그런 거예요."

"내가 먹으려고 만진 게 아니다. 왜 그래? 내가 치매라도 걸렸으면 좋겠냐?"

"아유 참내. 엄만 또 왜 그렇게 받아들이셔요? 그런 뜻이 아닌 걸 아시면서..."

"네 년들이 날 자꾸 환자 취급하면서 모자란 사람처럼 대하니까 화가 난다."

"엄마, 오해하지 마셔요. 누가 엄마를 모자란 사람이래요? 엄마는 그 누구보다 똑똑하시고 정정하셔요."

"내 신세가 참 한심하구나! 내가 왜 이런 신세가 돼서 너희들한테 이런 취급을 받고 살까?"

 아침부터 엄마는 속상해하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분명 좀 전에 드신 약을 다시 꺼내셔서는 또 드시려 했다. 그래서 아까 드신 약이라고 알려드린 건데 엄마는 그걸 알려주는 딸에게 심하게 화를 내셨다.

엄마가 화를 낸 이유는 아마도 좀 전의 행동을 깜박한 당신이 싫어서였을 것이고, 그것을 지적하는 딸이 야속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계속해서 당신의 기억력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딸인 내가 당신의 기억력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 것처럼 받아들이시고 화를 내신다. 엄마와 함께 있으면 이런 일들이 하루에도 비일비재하게 반복된다.

엄마의 하루 일과는 잠자리에서 일어나시면 새벽부터 약을 드시는 일에서 시작하여 자기 전 약드시는 일로 끝난다. 나는 엄마가 드시는 약을 살펴보았다. 중복되는 약들이 많았다. 치료제와 건강기능 약을 번갈아가며 하루 세 번 한주먹씩 드신다. 그러고도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방금 드신 약을 또 드시려 한다.

엄마의 행동에서 나는 강한 생명력을 발견한다. 엄마는 보약이나 건강기능 주사를 더 맞고 싶어 하신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 때때로 엄마에게 근육 강화나 혈액순환을 돕는 주사제를 맞혀드리기도 한다.

엄마는 입으로는 죽고 싶다고 말씀하시지만 행위로는 살고 싶어 하신다. 엄마는 혼자 계시다 죽는 줄 알고 놀랐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죽음이 무섭고 두렵단다. 죽고는 싶으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무섭다고 하신다. 죽음이 무서우니 죽지 않기 위해 몸에 좋은 약을 많이 드시는 듯하다.

너무 많은 약을 중복해서 드셔서인지 손과 발뿐만 아니라 종아리가 퉁퉁 부어있다. 나는 엄마의 약 복용을 줄여드리기 위해 산책을 자주 시켜드릴 생각이다.



엄마의 컨디션 좋은 날(2022.3.29)


오늘은 큰언니가 2주 전에 신청한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 판정을 위해서 보험공단 직원이 조사를 나왔다.

엄마는 시각장애 판정을 받기는 했으나 요양보호사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장애등급 판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큰언니가 보험공단에 신청을 했는데 하필 언니가 부재한 상태에서 조사원이 방문을 한 것이다. "안녕하세요? 건강보험공단에서 나왔어요."

"네 어서 오셔요!"

"아, 장기요양보험 신청하신 따님이셔요?"

"아니요. 따님은 맞는데 제가 신청한 것이 아니라 저희 언니가 했습니다."

"그렇군요. 어르신, 오늘 컨디션 어떠셔요?"

"좋아요!"

"어디가 제일 불편하셔요? 어르신"

"불편한데요? 많죠"

"구체적으로 어디 어디가 아프신지 잘 말씀해 주셔야 저희가 도움을 드릴 수 있어요."

"무신 도움을 주실 건데요?"

"아, 장애등급 판정이 되면 요양보호사가 와서 어르신을 도와드릴 거예요. 그리고 의료기기나 노인요양보호 기관의 도움도 신청하면 받을 수가 있습니다. 어르신 도움받고 싶으신 것 맞나요?"

"잘 모르겠구먼요"

"어르신 따님께서 신청하셨으니 어르신이 아프신 곳 있으면 말씀해 주셔야 해요."

"무릎 아파서 걸을 수가 없다니까요."

"무릎이 아프시고, 그밖에 또 다른 곳은 없어요?"

"허리도 척추협착증이랴. 꼼짝을 못해. 그리고 첫째는 눈이 안 보여. 뿌연 안갯속을 보는 것 같아"

"어르신, 다리 좀 위로 들어 올려보실래요?"

"오늘은 좀 부드럽구먼요. 다리가 이렇게 들어지네"

"손가락 움직여보시고요. 머리도 도리도리 해보실래요?"

"오늘은 몇 월 며칠이죠?"

"3월 29일이요. 내가 그런 것도 모를 줄 알고?"

"아, 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는 오늘 최상의 컨디션이셨다. 다리를 번쩍 들어 올리시고, 대화도 제법 소통이 잘 이뤄진 날이다. 조사원도 나도 엄마에게 인지능력이 최고라고 칭찬해드렸다. 조사원이 가고 난 후 알고 보니 엄마께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관절염 진통제를 드셨다는 것이다. 진통제 고놈을 먹으니까 이렇게 무릎이 부드럽고 통증도 가라앉았다는 것이다. 오후에 정형외과에 가서 다시 검진을 해보니 무릎은 퇴행성 관절염, 허리는 척추협착증, 어깨는 관절염과 근육 통증이 좀 있다는 의사의 소견서를 받았다.

이제 엄마의 장애판정은 4월 초에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운 좋게도 엄마가 장기요양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다면 엄마와 전쟁은 잠정 휴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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