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농사짓던 시골 마을 출신이다. 농촌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땅이 있든 없든 농사짓는 일밖에 없었다. 땅이 없는 사람은 남의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거나 남의 농사일에 일용직 농부로 가서 일하고 품삯을 받아 살았다. 한정된 땅에서 다수의 인구가 먹고살고 배우고 내일의 꿈을 준비하기엔 다소 만족스럽진 못했지만 저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서 있을 자리가 있었다.
불과 19년 남짓 살았던 곳이지만 수십 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곳을 생각하며 향수에 젖을 수 있는 것은 그곳은 분명 내가 처음 태어나 성인이 되기까지 노약자인 나를 성장시켜준 곳이기에 그렇다. 향수에 젖으며 미소 지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마음의 위안이요 심리적 안정을 되찾게 하는지 불혹 이후에야 알았다.
내가 고향에 대한 정서가 그렇듯이 다른 이에게도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이 얼마나 소중하고 지키고 싶은 곳일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조국에 대해 그토록 뜨겁게 애국의 마음이 생길 때는 해외여행을 갔을 때였던 것 같다. 외국인들은 싫어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만이 좋아하는 김치 냄새, 된장 고추장 맛이 그리운 것은 나라를 떠나 있을 때 알게 된다.
해외 이민을 간 친구들도 한 번씩 이야기한다. 비록 자주 찾진 못하더라도 자신들에게 고국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말이다.
지난 1980년대에 이어 끊임없이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고향 말살정책은 밀려나는 실향민들의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여 처음 목격한 것이 구로동을 비롯한 서울 일대의 재개발이었다. 철거촌 사람들의 피 흘리는 절규와 투쟁, 철거반 노동자들의 무자비한 폭력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당시 철거촌 사람들은 철거반 노동자들을 철거깡패라 하였다. 급기야는 깡패들의 손에 끌려나가거나 사람이 있는데도 도끼질을 하는 바람에 다치고 죽어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결국 철거싸움은 힘 있는 자들의 승리로 끝나고 건설업자들은 아파트를 건설하여 땅값이며 건물값을 턱도 없이 높여서 부동산 투기꾼들을 양성하였다. 이에 대한 국토부 정책 또한 관련이 없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강제철거, 강제로 땅뺏기 등으로 버젓이 아파트 공화국을 세워나간 폭력자들에 대한 처벌법은 헌법 어디에도 없단 말인가?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쓰러져가는 가옥과 여기저기 낡은 집을 부수고 새로 짓는 일에 반대할 주민이 누가 있겠는가!
다만 반대할 이유인즉 집이 새로 지어지는 순간 새집은 내 집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손아귀에 넘어갈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싼값에 후려친 땅값을 치르고 빼앗아간 자들은 아파트를 지어 수십 배 수백 배로 땅과 건물값을 뻥튀기하여 나눠먹었다.
이런 돈 쓸어 담는 재미로 부자가 된 준재벌들이 우리나라엔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건설업계와 부동산업계의 호황기는 3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데 그 바람에 금융업계도 저절로 떨어지는 꿀송이를 빨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나눠먹기식 부의 축적은 수많은 실향민들을 양산했고 빈부격차를 하늘과 땅으로 갈라놓았다.
우리나라 개발정책은 낡은 집에 살아가고 있는 서민들을 위한 개발정책이 결코 아니었다는 점은 개발 관계자들이 더 잘 알 것 같다.
부동산 투기꾼들에 의해 기획된 재개발 정책은 서민들에게는 언제나 반강요적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절제할 줄 모르는 아파트 짓기는 도를 넘어선 지 오랜 것 같다. 농사짓던 곳, 무엇이 묻혀있을지 모르는 산등성이, 심지어는 갯벌을 개간한 곳까지도 아파트는 지어진다.
지진 한번 일어나면 힘없이 쓰러질 높디높은 아파트 안에는 위험을 감수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놀이공원에서 바이킹을 즐기는 것처럼 30~40층 스릴 있는 아파트가 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는집 잃고 월세 전전하는 이들이 넘쳐나니 이는 결단코 서민을 위한 개발은 아니었다고말할 수 있다.
고향을 잃고 떠도는 사회적 취약계층들
나도 한때는 자가(自家)에 살았었다. 먹고살기 힘들어서 억울하게 집을 잃어버린 지 오래지만 말이다.
하지만 무주택 전세에 전전긍긍하면서도 정부의 혜택을 받기에는 조금 넘친다고 하니 어찌 보면 우리 가족은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사회적 취약계층이라 여겨진다.
두 명의 아이들을 가르치며 4인 가족이 살아가기에 버거워서 국토부의 혜택을 기대한 적도 있으나 그도 경계선을 벗어나 있다고 답변이 왔다.
우리나라의 국민 지원정책은 소위 중산층을 위한 혜택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아예 일하지 않고 무소득자가 되거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위 소득계층으로 올라서는 것만이 우리나라에서 살아남는 비결이다. 국민연금이며 의료보험 등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자들이 근로소득자, 즉 중산층임에도 불구하고 중산층에 대한 혜택이 전무하니 소위 중산층으로 분류되는 국민들도 보금자리를 지키기엔 버겁기만 하다.
언제부턴가 보금자리를 잃은 일하는 중산층들은 오히려 삶의 위기를 경험하는 사회적 취약계층으로 전락해 있다. 일자리, 주거생활, 결혼, 출산, 자녀교육 등...
후손들만이라도 고향을 찾게 할 수 있을까
고향을 떠난 지 30년이 넘었어도 그립기만 하다. 고향은 정신적 안식처와 같이 안정감을 경험하게 하기 때문이다.
고향이 없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내가 고향 친구 이야기를 하면 매우 부러워한다. 고향 친구라 함은 같은 고장에서 태어나 같은 지역에서 같이 쭉 자라면서 서로를 잘 알고 지낸 어릴 적 배꼽친구들이다. 배꼽친구들은 성인이 되어 각자의 직업이나 생활을 위해 흩어져 살고 있지만 추억 속에는 고스란히 남아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제는 우리나라가 재개발이라는 개발정책을 멈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래가 없는 무분별한 집짓기 개발정책이야말로 지구 상의 종말을 앞당기는 원인이 될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삭막한 아파트 문화로 인해 마을과 공동체가 깨진 지 오래다. 윗집 아랫집 이웃지간으로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이해하고 더불어 살아가던 국민들의 정서를 지금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마을공동체를 깨뜨리고 아파트 공화국을 건설한 우리나라는 이제 인위적인 마을공동체를 형성하고자 한다. 하지만 자연적으로 형성된 마을공동체성과 인위적으로 형성한 마을공동체성은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부모가 일구고 가꾸며 살아온 터전에서 그의 후손의 후손이 나고 자라면서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형성된 이웃 간의 신뢰는 차후에 아파트를 중심으로 몰려든 사람들과 인위적으로 형성되는 신뢰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나는 마음이 무겁고 쓸쓸하고 고독할 때 고향에 다녀오곤 한다. 그리고 고향 친구를 만난다. 고향 친구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로가 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정서를 나는 내 후손들에게도 물려주고 싶다. 하지만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의 자녀 세대들은 고향이라는 의미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나고 자란 그곳이 사라지기도 했고 그곳에 살았던 이웃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기억에서도 지워졌기 때문이다. 개발이라는 이유로 그곳엔 고층 아파트들이 우뚝 솟아있고 낯선 이들이 들어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온 나라에 아파트와 도시화를 이루어가는 우리나라가 이제는 방향 전환을 했으면 좋겠다. 자본주의라는 늪으로 빠져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는 보금자리를 따뜻하게 지켜주는 그런 방향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