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자격증이 없으면 베테랑급 경력자들도 취업시장에서 무시당하고 소외받았다. 실업자들이 많아지고 취업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교육사업가들은 자격증 과정을 만들어서 자격증 장사를 시작했던 것 같다.
아기를 좋아하는 나의 언니는 맞벌이 여성의 자녀들을 돌봐주는 일을 했었다. 30년도 지난 일이지만 언니는 어려서부터 유치원 교사가 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가정 형편상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하여 유치원 교사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여유가 생기자 언니는 몬테소리 교육을 받았고 가정에서 놀이방을 개원하여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였다. 언니는 천성이 곱고 인내력이 많아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제격이라 생각된다. 언니가 낳은 외동딸이 있는데 딸을 키우는 동안 딸에게 화를 내거나 욕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아이가 어떤 짓궂은 행동을 해도 곱게 타이르거나 조곤조곤 나무라곤 하였다. 나는 그런 언니가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나라를 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언니의 손에 자라난 아이들은 성품이 곱게 성장하는 것 같다. 언니가 1990년대부터 2000년 초반까지도 자격증이 없는 채로 아이들 돌보는 일을 했었는데 어느 날부터 언니를 찾는 아이들이 뜸해졌다고 한다. 알고 보니 우리나라 보육정책이 생기면서 보육교사 자격증이라는 것이 있어야 국가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이왕이면 국가지원을 받는 놀이방,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싶어 하는 맞벌이 부모들의 선택 때문이었다. 당시 언니는 10년도 넘게 아이를 돌보아온 경력자인데도 자격증 앞에서 두 손 두 발 다 들어야 했던 경험을 한 것이다. 언니는 어쩔 수 없이 1년 동안 평생교육원에서 공부하여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 후 언니는 어린이집 교사를 천직으로 알고 아직까지 일하고 있다.
나는 언니를 통해 간접 경험을 톡톡히 하고서 기회만 닿으면 자격증 공부를 했다. 심지어 내 취미나 특기와도 상관없는 자격증을 막무가내로 땄고 언제 어느 때 어떻게 필요할지 모르니 무조건 자격증을 보유해 놓는 것이 좋을 거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허울 좋게 장롱 속에 묻힌 자격증들
요즘 나도 간혹 함께 일할 사람을 뽑는 면접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강사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여러 명의 이력서를 심사하는데 강사 지원자들의 이력서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감탄하는 경우가 있다. 어쩜 그렇게 많은 자격증과 다방면의 경력을 갖추고 있는지 말이다. 어떤 사람은 무려 자격증만 서른 가지 정도는 보유하고 있었다. 나보다 더 심한 사람이 있다니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수많은 자격증 중에 내가 정작 자격증답게 사용할 수 있는 건 몇 개 안된다. 아무리 자격증이 있어도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이나 나와 맞지 않는 일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 독서지도사, 글쓰기 지도사, 독서논술지도사, 평생교육사, 한국어지도사, 한자능력 지도사, 한국사지도사, 그림책 지도사, 심리상담지도사, 원예치료 지도사...... 등등
나는 내가 갖고 있는 자격증들이 내 노후에 사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준비했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하고 있지 않은 일을 노후에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노후가 되어서도 여전히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연장선에서 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니 그 많은 자격증을 굳이 돈을 들여 따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수년 동안 장롱 속에 갇혀있는 자격증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조차 기억할 수 없다.
자격증에 발목이 잡히다
내가 나이가 많아지고 독서지도와 동아리 지도를 오랫동안 해오고 있다 보니 소위 한 분야에서 잔뼈가 굵어져서 그런지 도서관 지인들이 특강을 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런데 국비 사업을 하는 도서관에 나는 특강 강사로 채용이 안된다. 이유는 특강을 할 수 있는 자격증이 없다. 특강 강사는 전문분야의 석박사 학위가 있던지, 특강 과목과 관련한 공공기관에 종사했던 경력자던지, 현재 기관장이나 단체장이던가 해야 한다. 나는 이 조건에 부합하지 않아 특강 강사로 채용될 수 없다. 내가 초등학생들에게 독서논술 지도를 하고 있을 때 학부모였던 친구가 나에게 조언을 했었다. "넌 지금이라도 대학원 공부를 더 해서 이 분야에서 업그레이드했으면 좋겠다"라고 말이다. 하지만 난 당시에 "지금 이대로가 좋아!"라고 대답했고 '꼭 공부를 더 해야만 하나?'라고 생각했다. 자격을 갖추기 위해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현장에서 실제적인 경력을 쌓는 것이 훨씬 더 노하우가 생기는 것 아닌가!
솔직히 말하면 나는 자격증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 중에 하나다. 신뢰성도 없는 자격증만 보고 인재를 등용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놓치는 게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기과를 졸업한 나의 지인은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않은 전기 기술자에게 보조 일을 하면서 현장 일을 배운다. 이론적으로는 많이 알고 있을지라도 현장에서 훈련하지 않고서는 전기에 대해 손을 댈 수가 없다고 했다. 모든 분야가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론과 실기는 함께 이루어져야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나는 이론보다는 실기 훈련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현실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훈련된 숙련공보다 이론적으로 자격증이 갖춰진 사람이 선택받는 시대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