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집에서 떠나 홀로 자취한 지 6개월 만이다. 부모와 함께 지낼 땐 응석받이기만 했다. 모든 것을 부모에게 의존했고 아들은 오직 대학 진학을 위해 공부하고 학원 다니는 일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가정에서 거들 일이 없었다. 그의 방청소도 입시정보도 모두 부모의 몫이었다. 등하교 시 대중교통 시간이 맞지 않아 새벽부터 자가용으로 아들의 등하교를 시키는 일이 하루 중 가장 급선무였다. 입시생 아들과 함께 지내면서 부모는 얼마나 부지런히 분주했는지 모른다. 그뿐만 아니라 때때로 그에게 지출되는 거액의 학원비와 하루 세끼를 밖에서 해결하니 식비 등도 부모로서 해결해주어야할 당연한 의무였다. 지갑에서 흘러나가는 비용과 하루를 분주하게 살도록 하는 시간 투자를 하면서도 나는 한편으론 행복하기만 했다. 아들에 대한 기대가 있었고 아들을 위한 생산적인 노력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들은 일거수일투족의 모두를 부모와 공유했고 그의 심리적 변화까지도 부모는 체크하고 배려해야 했다. 아들이 입시 준비를 하면서 부모와 아들은 밀착관계가 되어 매일을 동거 동락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쉬지 않고 노력한 아들은 원하던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학교가 집과 멀게 떨어졌기에 아들은 학교 근처에서 자취생활을 선택했다. 물론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성격이 예민한 아들은 기숙사보다는 자취하는 것을 선호하였다. 자취방을 구하고 임대계약을 하고 이사를 할 때까지도 아들은 부모와 함께 새로운 생활로 들어갈 생각에 이것저것 묻고 따지며 처음 시작하는 뭔가 생소한 생활에 낯설어했다. 그런데 막상 이사를 마치고 자취생활에 들어간 아들은 자신의 자취집으로 전입신고를 하면서 홀로 독립 세대가 되고자 했다. 그 바람에 우리 가족은 4인 가족에서 3인 가족으로 바뀌었고 아들은 사실상 1인 세대가 되어 가족으로부터 독립을 한 것이다.
부모로서 아직 어린 아들이 세대 독립을 한 것이 좀 서운하게 느껴졌지만 아들은 홀로 독립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스무 살에 부모의 품을 벗어난 아들은 경제적으로도 독립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학기 중에도 주 3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와 월세까지도 혼자서 감당하려고 했다. 때로는 부모가 보내는 용돈조차 거절하기도 했다. 아들은 부모의 경제적 어려움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직 부모의 도움을 받아도 되는 나이에 혼자서 생활의 짐을 지고 가려하는 속 깊은 아들이 오늘 부모를 만나러 집에 온 것이다. 딱 6개월 만이다. 아들은 떠날 때와는 확연히 다르게 의젓해졌고 더욱 성숙해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현관에 들어선 아들에게 신발 벗을 여유도 주지 않고 우리 부부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뭘 타고 왔니?""시간이 얼마나 걸렸니?"라며 온갖 질문을 쏟아냈다. 아들은 겸연쩍어하면서 "저 집에 좀 들어가게요!"라고 대꾸했다. 나는 아들을 위해 갈 때 싸주려고 준비한 조림용 반찬들을 전달하려고 했는데 아들은 괜찮다고 사양했다. 이제 "내가 다 알아서 잘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라고 말했다. 나는 아들의 거절에 왠지 부모의 배려조차 사양하며 멀어져 가는 아들에게 섭섭하기만 했다.6개월 만에 부쩍 자라난 아들을 보며 우리 부부가 아들을 품으로 안기엔 어느덧 작아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
남편은 나에게 '아들바라기'라고 질투 어린 핀잔을 할 때가 종종 있었다. 아들이 어릴 땐 어리니까 아들 중심의 생활환경을 조성했었고 음식도 아들이 소화하기 쉬운 것들로 준비했었다. 아들이 학교생활을 하며 대학입시를 치를 때까지 집에서 먹는 하루 한 끼만이라도 오로지 아들의 입에 잘 맞고 좋아하는 음식을 제공하려 애썼다. 그 와중에 남편에게는 소홀했던가 보다. 성격이 까다롭고 예민한 아들은 언젠가부터 바닷가나 물에서 자란 생선은 입에 대지도 않는다. 반면 남편은 유년시절을 바닷가에서 자랐기에 생선을 엄청 좋아한다. 그런 남편에게 나는 아들이 캠프에 갔거나 집에 없는 날에나 어쩌다 생선 반찬을 올렸다. 아들은 육식을 좋아해서 쇠고기, 돼지, 닭, 오리... 육류는 모두 잘 먹었기에 덕분에 매번 육류반찬을 한 가지 이상 반드시 제공했다. 올해 아들의 나이 스무 살, 적어도 6개월 전까지는 아들 중심의 생활이었으니 남편의 투덜거림도 이해할만하다. 그런데 이제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지금껏 그렇게 애지중지 사랑했던 아들의 마음을 얻고 싶다. 내가 아들의 관심을 얻고 싶은 기대가 커질수록 아들은 나를 밀어내기 하는 것 같아서 아들과 함께 하는 순간이 더욱 외로워진다. 이제 정말 아들의 독립을 온 마음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더욱 외로운 날이다.
내 마음 알아줄 사람이 없다고 느낄 때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자매 간에도 격세지감이 있다. 부모님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자란 맏언니와 남동생은 부모님의 간섭이 심하다는 불평을 하곤 한다. 하지만 두 언니와 두 남동생 사이에 낀 나는 간섭이라도 좋으니 부모의 관심을 좁쌀만큼이라도 받아봤으면 좋겠다.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형제자매들은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오자고 한다.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겨우겨우 빠듯하게 살아가는 우리 부부는 언감생심 해외여행은 먼 나라 얘기다.
돈 없다는 말보다 다른 핑계를 대며 함께 할 수 없음을 표현하면 형제자매들은 우리 부부에게 비협조적이라고 핀잔을 한다. 믿고 의지할 만큼 가까운 사이라고 느꼈던 사람들마저도 진정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다고 생각할때 느끼는 외로움이 뼛속깊이 아프게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