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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eong Sep 16. 2022

놀란 가슴을 다스리지 못하면

불안이 시작된다

유년기에 가슴 두근거림 증상이 생기다

내가 4~5세 정도 되었을 때 일이다. 나보다 두 살 어린 남동생, 그러니까 당시 3세 정도 된 동생과 장난감으로 놀이를 하고 있었고 어른들은 방안에 놀고 있는 아이들을 두고 마당에서 야채를 다듬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한참 놀고 있는데 동생이 갑자기 컥컥거리더니 눈동자를 뒤집고는 쓰러진 것이다. 나는 까무러치듯 놀라서 엄마를 부르며 울었다. 내 울음소리를 듣고 엄마는 곧바로 방 안으로 들어와서는 동생의 입을 벌렸고 손가락을 넣어 장난감을 꺼냈다. 장난감을 입에 물고 놀다가 목구멍으로 넘어가 기도를 막았다고 한다. 1~2분만 늦었어도 숨이 넘어갔을 것이라고 한다. 어른들은 동생만을 업고서 동네의원에게 달려갔고 까무러치게 놀란 나는 그냥 방에 홀로 놓였던 것 같다.

그 후로도 나는 어떤 치료도 받지 않았고 7~8세가 되어서는 자꾸만 가슴 두근거림이 멈추질 않고 계속되는 것이다. 당시 나는 엄마에게 가슴이 자꾸만 뛴다고 말씀드렸고 엄마는 그때마다 민간요법으로 사용하는 익모초를 다려서 먹여주었다. 하지만 나는 학교에서 고무줄놀이를 하다가 가슴 두근거림이 너무 심해서  수업을 들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께서 조퇴서를 써주셔서 나는 조퇴를 하고 귀가를 했는데 당시 엄마는 나를 데리고 한약방으로 갔다. 의원은 내 심장소리가 약하다며 약을 지어주셨고 그 약을 달여 먹은 뒤 나의 가슴 두근 거림은 멎었다.



큰기침소리에도 깜짝 놀라곤 하였다

직접적인 가슴 두근거림이나 불안과 초조함은 멈췄지만 조그만 외부 자극에도 나도 모르게 깜짝깜짝 놀라는 현상은 사춘기가 되었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아버지는 습관적으로 큰기침을 잘하셨는데 익숙하게 듣는 소린데도 나는 매번 들을 때마다 놀라곤 했다.  그리고 나는 어둠이 두려웠다. 그래서 잠잘 때에도 되도록 불을 켜고 잠을 청했다. 부모님은 그저 겁이 많은 아이 정도로 생각하시며 내가 잠들 때까지 불을 켜주셨다가 내가 잠들면 소등을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웃음병이었다. 작은 일에도 자주 웃곤 해서 별명이 "히뜨기"라고 불릴 정도로 자주 웃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웃음은 절제되지 않는 웃음이었다. 한 번은 중학교 음악시간이었는데 쉬는 시간에 옆 친구와 게임을 하면서 계속 내가 꺄르륵 웃어대니까 음악 선생님께서 수업시간보다 일찍 들어오셔서는 웃는 까닭을 물으셨다. 나는 별것 아닌 이유를 꼬치꼬치 캐물으시는 선생님을 보면서도 또 웃음이 났다. 급기야 선생님은 매를 들고 오셔서 어서 말하지 않으면 매질을 하겠다고 윽박질렀다. 나는 그 순간에도 웃음을 참지 못하여 수업이 끝나는 시간까지 "엎드려뻗쳐"라는 벌을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땐 꽤 상처가 되기도 했다. 한참을 지나 성인이 되어 알게 된 사실인데  심장기능이 약한 사람은 웃음이 헤프다는 동양의학설(?)이 있다고 한다.



사소한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이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빨리 돌아가시면 어쩌나 걱정되어 밤잠을 설치 때도 있었고 시험 전날 공부하면서 시험일에 연필이나 지우개를 빠뜨리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가방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버릇이 있었다.

청년기가 되었을 땐 비교적 불안을 느낄 시간이 없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돌아보면 친구 관계에서 친구가 배신을 하지는 않을까, 내가 의미 없이 던진 말에 상처를 입지는 않았을까, 자존심을 건드리지는 않았는지 걱정하며 신경을 곤두세웠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자녀들에 관한 걱정이다. 길 가다 넘어지면 안 되는데, 다른 친구들과 부딪혀서 싸우면 어쩌나, 학교에서 집으로 귀가하기까지 무의식 중 걱정이 마음 바닥에 흐르고 있었다.

지금은 자녀가 부모 곁을 떠나 자취를 하니 혼자서 밥은 잘해 먹는지, 아프지는 않은지, 돈이 떨어져서 궁상을 떨지는 않는지, 옷은 따뜻하게 입고 다니는지... 문자로 확인하면 매번 아들은 투덜거린다. "그런 걱정일랑 하지 마세요!" 엄마가 하는 걱정이 더욱 기분이 안 좋고 거슬린단다. 아들이 사춘기 이후 엄마의 사소한 걱정들에 대해 매섭게 반항하는 바람에 나는 내 성격과 성향에 대해 깊게 돌아본 적이 있다. 

"내가 왜 이럴까?"

생각해보니 한 번쯤 좋지 않은 경험들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유머로 던진 한마디의 말이 친구와 절교로 이어질 정도로 쓰디쓴 기억,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 때 귀가 시간이 다 되어도 돌아오지 않고 어디론가 행방불명이 되어 2시간 동안 애타게 찾다가 파출소에 신고까지 했던 일, 아들은 어둑어둑해서야 돌아와서는 옆동네 놀이터에서 스마트폰 게임하다가 왔노라고. 가슴이 철컥 내려앉았던 놀라는 일들이었다. 나는 그때마다 놀란 내 마음을 달래지 않고 그저 마음 한구석에 남겨 놓았던 것 같다. 결국 그것들이 아직까지 남아서 불안의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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