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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eong Sep 20. 2022

7세 때 가족과 분리되다

내 탓이다

 아버지가 위중한 병환을 얻었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어머니를 비롯해서 온 가족은 혼란스러웠다. 당시 우리 가족은 전업주부이신 엄마, 초등 4, 5학년에 다니던 연년생 언니, 일곱 살 나, 다섯 살 남동생, 세 살 막둥이와 아버지까지 일곱 식구였다. 아버지의 병환은 하루아침에 원인 없는 병이 아니라 장기간 속병을 앓아오다 얻으신 화병이 원인이셨다. 가장 아끼던 사람에게 빚보증을 해줬는데 이 사람이 다년간 빚을 갚지 않고 도망치는 바람에 빚 독촉과 경제적 부담을 아버지가 남몰래 오로시 지고 계시다가 급기야 쓰러지고 만 것이다.


어린 자녀들과 앞날이 창창한데 집안의 가장이 몸져누우니 어머니의 한숨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듯싶다. 결국 부모님은 농사짓는 외가댁으로 이사를 결심했다. 외가댁은 산골마을에 외딴집처럼 위치해 있어서 터도 넓고 안채, 사랑채가 있는 옛날 집이라 여러 세대가 살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어른들 차원에서 이사 결정이 끝나고 이제 언니들 학교 전학 문제와 아버지와 친가 어르신들 사이에 해결할 일들만 남은 상태였다. 외가댁에서 외삼촌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아이들을 먼저 이사 보내라는 것이다. 하지만 언니들은 한 학기를 마치고 전학하고 싶어 했고 막둥이는 젖먹이니 안되고 다섯 살 동생은 자주 아파서 안된다고 어머니는 거절하셨다. 그런데... 셋째만이라도 보낼 수는 있다고 하시며 내 얼굴을 빤히 보신다.

나는 가족과 떨어질 생각에 고개만 떨군 채 있었는데 부모님은 나를 몇 날 며칠 설득하셨다. 마침내 나는 어려운 결단을 하고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버스 두 번을 갈아타고서 외가댁으로 보내졌다. 가족들 모두 외가댁으로 이사올 때까지 삼 개월을 외가 식구들과 지냈는데 그 삼 개월이 지금 생각해도 3년, 아니 10년쯤처럼 기억 속에 남아있다. 부모님이 조금만 섭섭하게 대해도 나는 속에서 삼 개월이 솟구쳤다.

"그때 왜 그랬어? 내가 제일 만만했지?"

"나 같은 건 떼어놓아도 상관없었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일곱 살 때 삼 개월 먼저 가족과 떨어지게 된 건 내 탓이다. 그때 내가 안된다고 떼쓰고 울고 불고 했더라면 부모님은 나를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어린 나이인데도 거절하는 일이 부모님을 난처하게 할 것 같은 생각에 그저 내키지 않는 길을 따라나섰던 것이다.

그때 가족과의 분리가 두고두고 나의 정서를 해칠 것이라 생각했다면 나는 분명 거절했어야 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거절하지 못하는 내 이 성향이 내 인생에서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줄은 진정 몰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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