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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eong Sep 30. 2022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

엄마가 가슴을 치던 날

둘째 언니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한 채 1년을 집에서 놀았다. 이유는 당시엔 중학교 입학 시 등록금을 납부해야 했는데 둘째 언니는 등록금을 납부하지 못해서 진학을 못한 것이다.


 엄마는 외가댁에서 동생이 많은 장녀였다. 엄마 아래로 일곱 명의 이모와 외삼촌이 있었다. 엄마는 장녀로서 막내 이모가 시집갈 때까지 동생들을 보살펴야 하는 책임감을 갖고 있었다.

 둘째 언니가 중학교에 진학을 앞두고 있을 무렵, 엄마는 둘째 딸 교육을 위해 곗돈을 붓고 있었다고 했다. 등록일을 앞두고 곗돈을 타서 등록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외할머니께서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셨다고 한다. 셋째 이모가 결혼식을 해야 하는데 비용이 없으니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엄마는 처음에는 아이 등록금 낼 돈밖엔 없다고 거절했는데 외할머니는 딱 한 달 후에 갚아줄 테니 급히 빌려달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엄마는 그래도 믿을 수 없어서 안된다고 거절하셨는데 옆에 있던 아버지께서 엄마를 설득하셨단다.

"여보, 오죽하면 장모님이 저리 손을 벌리시겠소. 한 달 후에 갚겠다고 하시니 빌려줍시다."

엄마는 아버지의 설득에 못 이겨 둘째 언니 등록금으로 마련했던 돈을 외할머니께 빌려드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 셋째 이모는 시집을 갔고 한 달 후 외할머니는 돈을 갚지 않으셨다고 한다. 엄마 아빠는 둘째 언니를 진학시키지 못해 애가 탔지만 그렇다고 외할머니께 돈 갚으라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아 영영 돈은 되돌려 받지 못하였다.  그 바람에 둘째 언니는 중학교를 1년 늦게 다녔고 1년 후배들과 동급생이 되었으니 3년 내내 친구가 없었다고 한다.


엄마는 40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때 그 일을 후회하신다. 아무리 부모 자식 간이라도 돈거래를 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시며 그때 외할머니께 단호히 거절하지 못한 것이 후회막급하다고 가슴을 치신다. 엄마가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후회하시는 이유는 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준 것이 못내 마음 아프시기 때문이다.

지금은 외할머니도 아버지도 세상을 떠나시고 안 계시지만 엄마는 두 분에 대한 신뢰가 없으신 것 같다. 엄마는 아버지에 대해 실속 없는 분으로 기억하신다. 아버지는 부지런히 일하셔서 모은 재산을 허랑방탕하시는 다른 가족들에게 모두 바치고도 아까워하지 않으셨다. 그 바람에 엄마와 우리 형제자매들은 가난한 생활을 해야만 했다. 마지막 재산을 탕진한 것도 외삼촌의 사업자금으로 빚보증을 섰다가 외삼촌이 빚을 갚지 않는 바람에 아버지가 대신 갚아주게 되어 재산을 모두 잃게 되셨던 것이다. 그리고는 외가댁으로 가서 농사지으며 덧붙어서 살게 된 것이다. 그러고도 아버지는 엄마에게 외할머니한테 돈을 빌려주라고 하신 것이다.


빚을 빌려가고 갚지 않는 것도 습관인 것 같다. 외할머니는 왜 빌려간 돈을 갚지 않으신 걸까? 둘째 언니가 중학교 등록일에 등록금을 내지 못하고 1년을 놀게 되던 날 엄마는 당신의 가슴을 치면서 후회하며 내가 왜 거절하지 않았을까 자책하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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