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꿀꿀할 땐 백화점에 간다. 1층 잡화점에서부터 2층 숙녀복 의류점, 3층 캐주얼복 등, 6층까지 아이쇼핑을 하고 나면 꿀꿀했던 기분이 어느새 힐링 업으로 바뀐다.
어느 주말에 언니를 불러내어 기분전환도 할 겸 백화점에 가자고 했다. 언니도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비록 아이쇼핑이지만 눈이 행복하면 마음도 힐링되고 기분도 밝아지니 효과 만점이다.
백화점에 들어선 언니와 나는 신발, 가방, 액세서리, 화장품이 진열된 1층에서 이것저것 눈요기를 한 후, 숙녀복 의류 매장으로 올라갔다. 마네킹에 입혀진 여성복들은 탐스럽게도 내 시선을 빼앗아갔다. 언니는 내 시선을 의식하며 "얘, 저거 너 입으면 귀엽겠다. 한번 입어보지 않을래?"
"아유 아니야, 저런 건 날씬한 몸매에 길쭉한 사람이 입어야 폼이 나지..."
"그래도 한번 입어봐! 모두 키 큰 사람을 위한 옷은 아니니까..."
"크크 그래도 난 내 몸을 잘 아니까, 저런 옷은 안 맞을걸..."
언니와 나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여기저기 의류매장을 순회하는데 마네킹에 앙증맞게 입혀진 원피스들이 눈에 띄었다. 우리 자매는 자연스럽게 원피스에게로 시선이 갔고 마네킹 앞으로 가서 훑어보고 만져보고 관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언니와 난 원피스를 입지 않는다. 간혹 정장 원피스는 한두 벌 구비해두고 행사 때나 입을 정도이고 하늘하늘한 시폰 원피스는 입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유난히도 올여름엔 시폰원피스들이 많이 진열되었다. 왠지 마네킹이 부럽기도 하고 더 늙기 전에 저런 원피스 한번 입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부러운 시선을 위아래로 던지고 있었다.
그때 매장 점원이 다가와 들어오라고 친절히 부르는 바람에 자매는 자연스럽게 매장으로 들어갔다.
점원은 언니와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나에게 원피스를 입어보라고 권한다. 나는 나보다 날씬한 언니가 더 어울릴 거라며 언니에게 사양했다.
하지만 언니는 한사코 꽃무늬가 있는 시폰 원피스를 손가락질하며 입어보라고 권한다.
점원도 사이즈에 맞는 옷을 찾아와서는 친절히도 입어볼 것을 권유한다. 아무리 보아도 내 몸으로 소화하기 어려운 옷이다. 나는 정중히 거절을 하며 돌아서 나오는데 갑자기 언니와 점원은 나를 붙잡고는 입어보는 건 돈 내라고 하지 않으니 재미 삼아 입어보란다. 입어보면 느낌이 다를 수도 있다고...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내가 너무 소심한 건가?'
나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끝까지 뿌리치지 못하고는 매장으로 가서 꽃무늬 시폰 원피스를 입었다. 불편하기 그지없는 원피스를 몸에 걸치고 거울 앞에 섰는데...
언니와 점원은 입을 다문채 조용히 침묵하며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언니의 표정을 살폈다. 언니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내게 눈짓을 했다. 순간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분명 옷은 예쁜 옷인데 내 몸이 그 옷을 소화하지 못하는 불량 몸뚱이라는 뜻이다. 이럴 줄 알고 입어보지 않으려 했건만...
거절할 땐 단호한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설득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보이지 않는 자세 말이다. 끝내 거절을 성공하지 못하면 개망신당할수도 있다는 걸 꼭 명심하자고 나는 재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