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에는 친구들 사이에서 삼각관계가 흔하게 형성되었던 것 같다. 삼각관계라고 하면 세명의 친구사이에서 한 명의 친구에게 다른 두 명이 동시적으로 관심을 갖고 만나는 경우를 말한다. 물론 관계를 분명하게 끊고 맺는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나는 일을 할 때는 비교적 주장이 분명하고 끊고 맺는 것도 냉정하게 하는 성격이지만 인간관계는 분명하게 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그 바람에 오해받는 일도 많았고 나로 인해 상처를 받은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내가 대학원 생활을 하던 시절에 인간관계가 단출했던 친구 한 명이 있었다. 그 친구는 방과 후엔 줄곧 모든 시간을 나와 지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는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이런저런 일로 얽힌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았다. 방과 후 시간은 학교에서 보다도 더 바쁘게 스케줄이 짜여 있었다. 나는 한 친구와 자주 만날 형편이 안되기에 그 친구에게 내 스케줄을 공개하며 양해를 구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내 스케줄에 자신도 함께 움직이고 싶다며 자신을 끼어달라고 했다. 아니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내가 왜 내 스케줄에 친구를 데리고 다녀야 하는가 말이다. 어이없는 친구의 제안이었지만 당시에 나는 그 친구의 입장에서 생각해주고 싶었다. 나를 편안하게 생각하는 그 친구에게 야박하게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동아리 모임이며, 나의 절친과 만나거나 선후배와 만나는 자리에도 그 친구와 동석을 했고 심지어는 일자리 제안을 받아 면접을 하러 갈 때도 함께 했다.
껌딱지처럼 나와 그 친구는 항상 함께 동행했다. 물론 내가 그 친구를 절친이라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리고 그 친구를 특별하게 생각한 적도 없다. 그저 함께 공부하는 대학원생이었고 같은 수업시간에 강의실에서 만나 이야기 나누는 것이 전부였던 그냥 지인에 지나지 않는 친구였을 뿐이다.
한 번은 대학원 졸업 후 진로를 정하기 위해 10년쯤 위 선배님과 약속이 잡혀있는 날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오늘만큼은 내가 약속이 있으니 함께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나에게 그 자리에 자신도 함께 있게 해달라고 사정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나에게 중요한 일이니 한 번만 양해해달라고 나 또한 사정하듯 친구에게 부탁했다. 약속시간이 되어서 나는 친구가 모르게 학교를 빠져나와 약속 장소로 갔다. 학교 근처 레스토랑에서 선배님과 만나 한참 미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친구가 나를 찾아 그곳으로 온 것이다.
친구는 뻔뻔스럽게 내 옆으로 와서는 자기도 동석해도 되느냐고 묻는 것이다. 순간 선배는 약간 당황한 듯 나를 바라봤다. 그때 나는 완강히 거절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친구의 면전에서 어찌할지 몰라 쩔쩔매다가 함께 동석하게 되었다. 일자리를 제안하며 내가 적격인지 면담 중이던 선배는 언짢은 낯빛으로 자리를 떴고 그 후 더는 연락이 없었다. 나는 그림자처럼 매일 나와 함께 하려 하는 그 친구가 야속했다.
지금은 연락도 안 하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지만 그때 그 친구와 관계는 이제 와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비정상적이었다. 나에게 집착했던 그 친구는 그가 결혼하고 몇 년 후에 나와 연락이 끊어졌다. 돌아보면 그 친구와의 관계도 적절하게 단호히 거절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