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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eong Dec 16. 2023

엄마에게 매 맞던 아이

"엄마만 행복하면 참을 수 있어요!"

지수는 아빠 없이 엄마랑 단 둘이 살아가는 아이다. 엄마 유행란은 16살에 아이를 출산한 미혼모 여성이다. 중학생 때 학교를 오가며 우연히 고등학생 학수라는 오빠를 만나게 되었다. 얼굴이 하얗고 코가 오뚝한 학수는 어디 하나 빠질 데 없이 빼어난 꽃미남이다. 게다가 당시 행란은 몰랐지만 학수의 집안은 유복하고 화목한 가정이었다. 아버지는 대학 교수이고 어머니는 시청 공무원이셨다. 형제자매 없이 외동으로 자란 학수는 주위 사람들의 온갖 관심과 사랑은 받으면서도 학교에서나 학원에서나 뛰어난 외모만큼 친구 사귀는 법은 잘 몰랐다. 그저 혼자 가방 들고 학교와 학원, 부모님이 다니시던 교회를 오가는 것이 그의 사회생활의 전부였다. 학수 주위의 다른 친구들도 학수를 보면서 호감을 갖기는 했지만 선뜻 학수에게 다가가지는 못했다. 아마도 학수의 흠 없는 조건이 다른 친구들과 거리를 좁히는 데 어렵게 만든 것 같다. 그는 모범생이기에 학교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반에서 상위권을 자연스럽게 유지하고 있었다. 학원에서도 학수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의 대입 성공이 바로 학원을 빛내줄 홍보대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학수가 어떻게 행란과 인연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할 것이다. 학수가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을 맞이했을 때이다. 교회에서 중고등부 겨울 수련회를 간다고 했다. 학수는 머뭇거렸다. 하지만 부모님과 교회 선생님들의 설득에 못 이겨 수련회 등록 신청을 하였다. 이제 대입준비를 하려면 고1 겨울방학이 마지막 여유를 누릴 기회라는 설득에 학수는 그만 넘어가고 만 것이다. 중고등부 겨울수련회는 사실 중고등부 학생들을 포교하는 목적이 컸던 것 같다. 교회 밖의 친구들도 함께 갈 수 있도록 초대장을 허용했으며 모든 비용은 무료로 지원을 하는 프로젝트다. 학수는 평소 친분 있는 친구가 없었기에 다른 친구를 데려갈 수는 없었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은 자기들의 교회 밖 친구들을 두서너 명씩 데려오기도 했다. 드디어 수련회가 시작되는 첫날, 대형 버스를 타고 강원도를 향해 출발하였다. 2박 3일 숙박을 하는 여정이다. 4~5시간을 버스 안에서 머무는 동안 자기소개와 간단한 퀴즈 프로그램 등 진행자는 참가자들의 마음이 호기심에 가득 차도록 다채로운 순서로 감동 시켰다. 학수의 소개순서가 왔을 때 학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자 많은 친구들이 일제히 학수를 바라보며 큰소리로 박수를 치며 환호를 울렸던 것까지는 학수의 귀에 확연히 들어왔다. 하지만 그 뒤 학수의 소갯말이나 진행자의 거드는 말은 학수의 기억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그만큼 학수는 긴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렸을 때 학수는 아득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낯선 아이들과 어떻게 2박 3일이나 지내지?라는 근심 서린 생각말이다. 


그런데 마침 깜찍하게 생긴 한 여학생이 학수 앞에 딱 막아섰다. 맹랑하게 생긴 여학생으로 교회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친구였다. 학수는 그녀의 시선을 따돌리며 몸을 돌려서 지나치려 하는데 행란은 또다시 학수의 앞을 가로막았다. 학수는 황당한 표정으로 행란을 쳐다보았는데 그때 학수가 바라본 행란은 딱 날라리 비행청소녀였다. 인상을 찌푸리며 돌아서는 학수에게 행란이는 얄궂은 미소를 지으며 한발 더 다가섰다.  행란은 학수에게 손을 내밀며 "내 이름은 행란이야!" "나보다 오빤거 같은데 난 이 교회 처음 왔거든. 수련회 할 동안 나랑 친구 해주라!" 학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 난 고등학생이야. 넌 중학생인 거 같은데 너랑 같은 또래들하고 어울려야지..."라고 대답했다.

 사실 행란은 자신의 행색은 그래도 내심으로는 그 누구보다 바르게 살아보고 싶은 사람 중 한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라고 학교에 다니면서 자신의 독특한 성향 때문에 친구들이 자기를 멀리한다는 이유 빼고는 자신감이 넘치는 아이다. 행란은 친구의 권유로 수련회에 등록하기는 했지만 교회 분위기나 신앙을 갖는다는 것 자체에 큰 호감은 없었다. 수련회 출발 직전 행란의 눈에 띈 한 사람이 바로 키가 훤칠하고 얼굴이 뽀얀 학수였다. 순간적으로 행란은 학수를 만나기 위해 자기가 여기 수련회에 온 걸까?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학수에게서 느낀 감정이 강렬했다. 자신감이 넘치고 거침이 없는 행란은 도착 즉시 학수에게로 다가간 것이다. 하지만 학수를 자신에게로 넘어뜨리기는 쉽지 않았다. 학수는 여자친구에 대한 관심이 그다지 없는 것 같았다. 아니 친구 사귐이 익숙지 않으니 다가오는 친구가 오히려 어색하여 더 멀어지려 하는 것 같았다. 행란은 그럴수록 더욱 학수를 넘어뜨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본강당에서 수련회 집회가 한창일 무렵 행란은 학수를 밖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말을 걸었다. 학수는 주위를 살피며 자꾸만 쭈뼛거렸다. 행란은 학수의 소매를 잡아 이끌며 "오빠는 생김새는 멀쩡해가지고 왜 그렇게 어린애 같아?"라고 비아냥거렸다. 학수는 자신감은 없어도 자존감만큼은 높은 사람인데 자신을 향해 어린애 같다는 말에 비위가 확 상했다. 학수도 행란을 향해 " 넌 누구에게나 이렇게 무례한 애냐? 내가 뭘 어땠다고 어린애 같다는 거야?"라며 받아쳤다.  행란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 같은 여학생이 호감을 보이는데도 오빠는 미동이 없잖아? 어찌해야 할 줄도 모르고..." "그러니까 아직 어린애 같은 숙맥이라는 거지..." 

 순간 학수의 자존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화도 나고 비위도 상한 학수는 돌발적으로 행란의 왼쪽 어깨를 낚아챈 다음 순식간에 입술을 덮치고 말았다. 그러더니 학수는 행란을 향해 "이런 걸 원한 거야? 이런 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거 아냐?"라고 거칠게 말했다. 행란은 순식간적으로 일어난 돌발적 상황에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학수의 뺨을 손바닥으로 후려치고는 한참 동안 노려보다가 학수의 머리를 잡아 이끌며 숙소로 데려갔다. 그렇게 인연이 된 학수와 행란의 관계는 수련회 이후로도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매일 만나는 관계로 발전했던 것이다.


그리고 행란이 중2 겨울방학을 맞이했을 때 그의 복중에 생명체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는 부모님에게 알려질 것이 그 어떤 것보다 두려웠다. 그래서 행란은 가출을 결심했다. 될 수 있으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숨으려고 했다. 하지만 행란은 갈 곳도 받아줄 곳도 없었다. 학수와 연락이 끊긴 건 이미 수개월째였다. 학수는 대입 준비를 위해 공부에 매진해야 하는 시기여서 부모님이 방학 때 해외에 교환학생으로 보낸 상태였다. 행란은 처음엔 자취하는 아는 언니들 집을 찾아 순례하다가 찜질방에도 들어가고 수개월을 떠돌았다. 부모님이 실종 신고만 하지 않았어도 큰 문제는 없었을 거라 생각했다. 경찰들에 의해 붙잡힌 행란은 집에는 절대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말했으나 부모님의 말과 행란의 말이 어긋나는 것을 수상히 여겨 경찰들은 행란을 쉼터에 머물도록 하였다. 행란은 쉼터 선생님들을 통해 낙태수술을 소개받았지만 7개월이나 된 생명체를 없애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행란은 그 생명체가 유일한 학수와의 끈이라 생각했다. 행란은 쉼터를 통해 자신의 임신 사실이 부모님에게 알려지고 부모님의 낙태권유를 받았으나 강력하게 반대의사를 밝혔다. 행란의 그런 의견이 존중되어 비로소 중3 나이에 행란은 출산을 하였다. 십 대 소녀 엄마의 몸에서 태어난 아이의 이름이 바로 지수이다.


지수는 아빠와 엄마를 반반씩 닮은 예쁘고 야무진 여자 아이다. 모든 성장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었고 눈치도 빨랐다. 그는 어린이 집에 다녀와서는 묻는다. "우리 아빠는 어디 있어? 왜 우리 집엔 아빠가 없어?"라고. 야무지고 똑똑한 아이의 물음에 토닥여줄 여유가 없는 행란은 오히려 아이의 질문이 얄밉게 느껴져서 회초리를 들게 되었던 것이다. "또다시 아빠라는 말을 하기만 하면 이렇게 맴매할 거야! 엄마가 아빠를 찾아줄 때까지는 아빠라는 말을 꺼내면 안 돼!"라고 행란은 아이에게 억지를 부렸다. 그런데 어린 지수는 엄마의 눈에 눈물이 맺힌 것을 알아보고는 "알았어요. 엄마, 나는 엄마만 행복하면 참을 수 있어요. 엄마가 웃을 때 제일 좋아요!"라고 울면서 대답한다. 행란은 회초리를 멀리 던지고는 아이를 껴안고 흐느껴 울었다.


 이렇듯 엄마와 아이의 애착 관계가 돈독해 보이지만 사실 지수는 하루에 한 번도 엄마의 매를 걸러본 적이 없을 정도로 엄마에게 매를 맞으며 성장했다. 하지만 엄마가 유일한 자신의 울타리라고 여긴 지수는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매 맞는 이야기를 발설하지 않았다. 지수의 흉터나 멍울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은 드물게 있었으나 밖으로 보이는 모녀관계의 애틋함을 보고 엄마에게 매 맞는 아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심지어 어린이집 교사들도, 그가 자라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도 아무도 그를 가정폭력의 피해자라는 것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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