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yeong Feb 14. 2024

인간의 조건 1

존재한다는 것

생명의 잉태

초등학교 5학년 세돌이라는 남자아이는 일곱 살 때부터 수민이라는 여자친구를 좋아했다고 한다. 같은 어린이집, 같은 유치원,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그 둘은 절친으로 지냈다. 그러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그들은 서로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고 사랑을 고백하며 남녀가 사랑하는 법을 인터넷으로 검색하였다. 그리고 소위 야한 동영상(야동)을 함께 시청하며 호기심을 불태웠다. 사랑법을 어느 정도 마스터했다고 생각할 무렵 세돌은 수민을 만날 때마다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세돌과 수민의 가족들은 둘이서 친하게 지내는 것을 익숙하게 여겼고 둘이서 서로에게 불타오르는 호기심에 대해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닥쳤다.

세돌은 외동으로 다른 형제가 없었다. 그래서 세돌 엄마는 방과 후에 틈만 나면 세돌을 데리고 수민의 집에 놀러 오곤 하였다. 그날도 세돌은 엄마를 따라 수민의 집에 놀러 왔다. 수민에게는 어린 여동생이 한 명 있었는데 세돌엄마와 수민엄마 그리고 수민이 동생이 백화점으로 쇼핑을 가기로 한 것이다. 세돌과 수민은 학교 숙제를 한다는 핑계로 수민의 공부방에서 함께 있었다. 드디어 세돌이 기다리던 기회가 오고야 만 것이다. 수민의 집에 세돌과 수민 단 둘이 있게 되니 세돌은 수민에게 자꾸 장난을 걸었다. 수민도 세돌이가 간지럽히고 볼을 잡아당기는 장난이 그리 싫지 않았다. 세돌은 수민이가 반항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점점 수민의 몸을 더듬거렸고 옷을 벗기며 가슴도 주물렀다. 수민은 움찔거리긴 했지만 그도 호기심을 불태웠던 터라 반항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고 세돌이의 피부를 의식하며 뭔지 모를 기분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벅차오르는 숨을 가쁘게 내쉬자 세돌은 수민의 온몸을 덮쳤고 둘은 한 몸이 되어 뒹굴었다. 둘의 씩씩거리는 소리가 온 집안에 메아리치는 동안 그 집에는 둘만의 시간이었다. 세돌이가 신음소리를 내며 쓰러졌을 때 수민은 자신의 침대에 피투성이가 된 것을 발견하고는 침대시트를 걷기 시작했고 세돌도 알몸인 채로 거들었다. 세돌과 수민은 상기된 채로 둘이서 함께 몸을 씻고 나와 다른 식구들이 돌아올 때쯤엔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남은 숙제를 하고 있었다.

그날, 그 둘의 사랑 행위는 비록 어린 몸이었지만 결실을 맺고 말았다. 수민의 작은 몸에 생명이 잉태된 것이다. 그로부터 석 달 후에 수민이 밥 먹고 나서 소화불량이 자주 생기고 생리도 거르게 되어 엄마와 함께 한의원에 갔다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 인간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낙태

수민이도 엄마도 심한 충격을 받았다. 어린 딸의 임신이라니...

자신의 몸에 아기가 잉태되었다는 말에 수민은 믿기지 않았고 신기하기만 했다. 하지만 밖으로 드러내기엔 흔하지 않은 일이라 어찌해야 할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수민은 자신의 임신 사실을 비밀로 간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수민의 엄마는 수민에게 낙태를 강요하였고 아기 아빠가 누구냐고 캐물었다. 수민엄마는 수민이가 누군가 가까운 사람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생각했기에 조심스러웠고 수민을 성폭력상담소로 데려갔다. 하지만 수민은 그 어떤 말도, 그 누구에게도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상담사도 엄마도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 서둘러서 낙태할 것을 강요하였다. 수민은 아기를 지우지 않겠다는 말과 자신은 성폭력 피해자가 아니라는 말만 되뇌었다. 하지만 아무도 수민의 그런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고 수민의 몸에 손을 댄 남자가 누구인지, 아기를 잉태시킨 주범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다. 수민엄마는 뱃속의 생명체가 성장하기 전에 낙태수술을 받을 것에 대해 재촉하였다. 수민은 엄마의 다그침에 겁을 먹고는 가출을 한 것이다. 그리고 세돌에게 전화를 걸어 임신한 사실을 알렸다. 세돌은 수민이 임신했다는 문자를 받고 깊은 충격을 받았다. 그 후로 정서불안증세를 보이며 안절부절못하는 세돌을 보며 세돌엄마는 세돌을 정신과에 데려갔다. 세돌은 정신과에서 안정제를 처방받았고 엄마에게 수민이 자신의 아기를 가졌다고 실토했다. 세돌엄마 역시 세돌보다 더 크게 충격을 받아 몸져누웠고 여러 날 동안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수민엄마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할지 판단이 서실 않았다. 그렇게 복잡한 생각에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수민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수민이 세돌의 집에 놀러 가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리고 수민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가출한 것 같다고 수민엄마는 대성통곡을 하였다. 딸이 누구의 아기를 가졌는지 알 길이 없는 터에 누구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저 미어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부짖는 수민엄마에게 세돌엄마가 다가가서는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다 내 잘못이라고 함께 눈물을 터뜨렸다. 그때 수민엄마는 무슨 일이냐며 물었고 세돌엄마는 세돌이로 인해 수민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두 엄마는 왕방울처럼 커진 눈으로 한참 동안이나 서로를 쳐다보며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입을 떼지 못했다. 두 엄마에게 답은 하나로 모아졌다.

낙태다. 아이가 아이를 어찌 낳는단 말인가? 두 엄마는 경찰을 불러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4학년 때 전학 간 친구집에서 숨어 지내는 수민을 찾았다. 하지만 찾아온 수민을 경찰들은 가정법원으로 송치했고 가정법원에서는 성폭력피해자보호 상담센터로 보냈다. 수민의 담당보호자들은 한결같이 낙태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산부인과 병원에서는 양측 부모의 동의서와 당사자 동의가 있어야만 낙태수술을 해 줄 수 있다고 답했고, 양측 부모들은 낙태해야 한다는 생각이 모아졌기에 세돌이도 부모의 설득에 못 이겨 낙태에 동의한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수민은 끝까지 낙태하지 않겠다고 버텼지만 세돌이의 동의서를 보는 순간 배신감이 들었고 마침내 다음날 수민도 낙태할 뜻을 보였다. 그렇게 한 생명체는 채 4개월도 버티지 못한 채 어린 엄마의 몸에서 버림을 받고 만 것이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지만 또한 천하디 천하게 힘없이 사라질 수 있는 존재일 줄이야...



작가의 이전글 천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