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열여섯 살 된 정아의 가족은 정아와 엄마, 그리고 아빠가 각각 다른 언니 둘, 모두 네 식구다. 엄마를 중심으로 세 자매가 한 집에 살고 있지만 자매끼리는 서로 서먹한 관계다. 올해 스물다섯 살 정아의 첫째 언니는 그녀가 세 살 되던 해에 그녀의 아빠가 교통사고로 하늘나라에 가셨다. 갑작스럽게 아빠와 헤어진 어린 딸은 아빠를 찾으며 울었는데 그 모습을 본 주위 어른들도 함께 눈물을 훔치며 안타까워 했다고 한다.
정아의 첫째 언니가 여섯 살 때, 정아 엄마는 두 번째 남자를 만나 재혼을 했고 정아의 둘째 언니를 낳았다. 올해 열아홉 살인 정아의 둘째 언니는 첫 돌도 되기 전에 그녀의 아빠와 사별을 했단다. 온 가족이 해수욕장으로 피서 갔다가 피서지에서 정아 엄마의 두 번째 남편도 익사 사고로 변을 당했다고 한다. 정아 엄마는 성씨가 다른 두 딸을 데리고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아 세 번째 남편을 맞이했고 세 번째 남자와의 사이에서 정아를 낳았다. 하지만 세 번째 정아 아빠 역시 정아가 세 살 때, 비 오는 날 오토바이 타고 배송하는 일을 하다가 빗물 위에서 미끄러져 즉사했다. 세 딸을 각각 다른 남자에게서 낳은 세 자매의 엄마는 '임영신'이라는 여성이다.
이제 남자라면 트라우마에 치를 떠는 정아 엄마는 세 자매를 양육하는 한부모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이로써 그녀는 "가족"이라는 끈을 세 딸에게 이어주었다. 한 엄마의 딸이지만 생김새와 성격이 각각 다른 세 자매는 친밀감은 없지만 서로에게 위로와 안도감을 주고받는 끈끈한 한가족이다. 영신은 세 딸들이 서로에게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려주었고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세뇌하듯 되뇌었다.
사별
세 남자에게서 세 딸을 낳은 영신은 만나는 남자마다 비명에 사별을 하게 되니 자신의 팔자가 고약하다고 절망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첫째 남편은 영신이 열여덟 살에 만난 한눈에 반한 첫사랑이다.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연애질이나 한다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면서도 영신은 끈질기게 첫사랑 남자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다 혼인도 하기 전에 덜컥 임신을 하였고 그 바람에 만삭의 몸으로 스무 살에 결혼식을 올렸다. 혼인하고 얼마 안 있어 첫째 딸을 낳았는데 훤칠하고 윤곽이 뚜렷한 남편을 똑 닮았다. 남편은 자상하고 유순하여 아내를 잘 도와줄 뿐만 아니라 딸을 살뜰하게 보살폈다. 첫째 딸은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해서 아빠랑 떨어지는 걸 싫어했다. 아이가 갓 돌을 넘겼을 때 영신의 첫째 남편은 직장에서 밤샘 작업하고 늦은 밤에 귀가하다가 졸음운전으로 마주 오던 트럭과 충돌하여 목숨을 잃고 말았다. 당시 영신은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영신은 직장에서 만난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남자는 총각이었지만 영신과 그의 딸을 품어주기로 마음먹고 영신에게 청혼을 한 것이다. 영신에게 두 번째 남편은 행운이었다. 착하고 성실한 남자였고 자신의 피가 섞이진 않았으나 영신의 첫째 딸을 진심으로 아끼고 귀여워하였다. 얼마 후 영신은 두 번째 남편에게서 둘째 딸을 낳았지만 영신의 남편은 첫째 딸을 더 챙기고 예뻐했다. 두 딸과 네 가족이 된 영신과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캠핑을 자주 다녔다. 특히 남편은 바닷가에서 캠핑하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세 여자들에게 자신의 수영실력을 뽐내기도 했고 잠수하며 깜짝 놀라게 해주기도 했다. 그가 익사 사고를 당한 날도 가족들과 캠핑을 즐기던 중 날벼락처럼 당한 일이다.
영신은 첫 번째 남편과 사별했을 때보다도 두 번째 남편을 떠나보내고 더 슬픔을 가누지 못했다.
아이들과 홀로 가정을 꾸려갈 일이 막막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영신은 자신이 부모 없이 보육원에서 자랐기에 자신이 낳은 자녀들에게는 버젓이 부모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었다. 이는 남들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일이지만 영신에게는 커다란 소망이요 꿈이었다. 하지만 영신의 소망과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니 서글플 뿐이었다.
또 여러 해가 지나고 영신은 그녀가 다니던 교회 동료로부터 세 번째 남편을 소개받았다. 영신은 어린 두 딸을 홀로 키울 자신이 없다는 핑계를 앞세워 소개받은 남자와 세 번째 결혼을 했는데 세 번째 남자도 초혼이었다. 그는 미대를 졸업하고 가구디자인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디자인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작과 판매까지 도맡았다. 그는 밖에 나가면 탤런트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을 만큼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남이었다. 영신을 무척이나 사랑하였다. 영신은 세 번째 남편에게서 셋째 딸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정아라는 아이다. 영신은 셋째 딸을 낳고서 자신의 인생이 신의 은총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정말 하나님께서 자신을 측은히 여겨 멋진 남편을 보내주셨다고 믿었으며 세 딸과 세 번째 남편과 백년해로하며 못다 이룬 사랑과 행복을 누리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영신에게 하느님은 무심했을까? 세 번째 남편마저 가구배송을 하던 중 빗길에 미끄러져 죽고 말았다.
이제 영신에게 더 찾아올 기회는 없었다. 영신은 남자콤플렉스에 빠져있다. 그는 세 번째 남편을 잃고 나자 하느님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영신은 연속적인 상처와 실연 끝에 자신도 모르게 성장해 갔다.자신의 내면을 자신이 아닌 남편으로 채우려 했던 것이 헛된 것이라는 걸 남자 셋을 보내고 나서야 깨달았다. 자신의 내면을 채우는 것은 오로시 자신의 몫이며 그것은 사람으로도, 물질로도 대신할 수 없다는 걸 영신은 진실로 알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