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화] 3년 만에 다시 찾은 함덕, 그리고 22살의 여름
"야, 여기 뇨끼 진짜 맛있다. 이 식당 어떻게 알았냐?"
친구가 감탄하며 접시를 비웠다. 나는 웃으며 대답을 얼버무렸다. 사실 이곳은 3년 전, 내가 그녀와 마주 앉아 떨리는 손을 숨기며 밥을 먹었던 바로 그 자리였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짠 내. 귓가를 때리는 폭죽 소리. 해변을 걷는 사람들의 소음.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함덕의 밤바다는 소름 끼칠 정도로 그대로였다.
변한 것이 있다면 딱 두 가지.
그때 내 옆에는 나를 숨 막히게 했던 사람이 있었고, 지금 내 옆에는 아무것도 모른 채 뇨끼를 먹고 있는 20년 지기 친구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때의 나는 전역증 하나가 세상의 전부인 22살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그녀가 걸었던 길을 기어이 따라 밟아온, 제법 단단한 어른이 되었다는 것.
식사를 마치고 홀로 밤바다 앞에 섰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그때의 대화를 기억해 내라는 듯 귓가에 웅웅거렸다.
'오빠는 꿈이 뭐야?'
'음... 그냥, 돈이나 벌어야지.'
그날, 나의 세상은 그녀를 중심으로 돌았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어른이었고, 나는 고작 사회라는 정글 앞에 선 겁먹은 아이였다.
그녀가 건넨 명함이 너무 무거웠다. 내가 건넬 수 있는 건 초라한 진심뿐이었다.
나는 도망쳤다.
하지만 그 비겁했던 멈춤이,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
적성에 안 맞는 전공을 버렸다. 편입을 준비했다. 무작정 창업 대회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3년을 달렸다.
그 여름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것은 그 치열했던 계절의 기록이다.
2022년 6월. 부대 정문을 나섰다.
20살에 입대해 22살까지. 2년이라는 시간을 꼬박 채우고 나오는 길이었다.
"시원섭섭하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그보다 정확한 표현은 없었다. 직업 군인을 고민했던 나에게, 이젠 보고해야 할 상급자도, 지켜야 할 점호 시간도 없다. 완벽한 자유.
하지만 그 자유의 무게는 생각보다 묵직했다.
위병소를 등지고 걸었다.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명령이 사라진 자리에 '책임'이라는 놈이 묵직하게 들어와 앉아 있었다.
나는 이제 내 인생을 혼자서 지휘해야 했다. 그 막막함이 6월의 햇살보다 뜨거웠다.
"야, 일어나! 고기 먹으러 가자."
제주도 여행 첫날. 피곤에 절어 숙소에서 낮잠을 자던 나를 형이 흔들어 깨웠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끌려간 곳은 바다 바로 앞의 게스트하우스 야외 바비큐장이었다.
코를 찌르는 훈연 냄새. 숯불 위에서 떨어지는 기름 소리. 그리고 바로 코앞에서 들려오는 철썩이는 파도 소리.
그 낭만적인 소음들 사이로, 한 여자가 보였다.
엄청 앳된 얼굴. 나보다 한 살 어리다고 했지만, 내 눈에는 마냥 소녀처럼 보였다. 고기를 구우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저는 경영학과인데, 컴퓨터공학으로 전과하려고요. 개발자가 되고 싶어서요."
편입을 생각하던 나는 별생각 없이, 가볍게 물었다.
“전과 준비는 잘 되어가나요?”
그러자 그녀는 말했다.
"네, 그래서 이번 학기에 무턱대고 컴퓨터공학 전공 수업을 들어봤어요. 따라가느라 진짜 고생했는데, 오히려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저는 지금이 아니면 평생 못 할 것 같아서요."
순간, 집게를 든 내 손이 멈칫했다. 나는 방금 전까지 '전역했으니까 후회 없이 놀아야지'라는 생각뿐이었는데, 내 손에는 고작 전역증 한 장이 들려 있는데, 그녀의 손에는 이미 선명한 청사진이 들려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곤조곤했지만, 눈빛은 확신에 차 있었다. 자신의 전공을 바꾼다는 것. 21살에게 그게 얼마나 큰 용기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나 역시 '전역'이라는 선택을 하기까지 수없이 망설였으니까.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폐부를 찔렀다.
나는 전공과 현실이 싫어서 군대로 도망쳤는데,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스스로 길을 만들고 있었다.
그 앳된 얼굴 뒤에 숨겨진 단단함. 비몽사몽했던 내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날 밤, 나는 알지 못했다. 동경이라는 이 감정이, 앞으로 나를 얼마나 집요하고 처절하게 괴롭히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