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선 <옴니시아를 위한 비가> -2-
※ 이 시리즈는 비정기적·실험적 성격을 지닌 글입니다.
다소 낯설거나 강렬한 표현이 포함될 수 있으니, 독서에 참고해 주세요.
11월.
B역 인근, 낡은 역사 너머로 솟은 하얀 콘크리트 타워가 마치 종유석처럼 하늘을 찔렀다.
그 건물 안쪽, 열일곱 층짜리 주상복합의 껍데기를 덮는 작업장. 나는 그곳에서 막일을 하고 있었다.
코로나.
집세도 떨어질 만큼 떨어진 시대.
누구도 미래를 말하지 않았고, 운명 같은 건 공중에 매달린 채 썩어가고 있었다.
시멘트 냄새가 늘 가슴팍에 스며들었다.
시큼하고 퀴퀴한 먼지는 바람 없이 무거워졌고, 내 폐 안쪽에 가라앉았다.
숨을 쉴 때마다 뜨겁게 식어가던 폐의 숨결은, 서서히 굳어갔다.
어느 날이었다.
작업을 마치고 늦은 밤, 김이 서린 컨테이너 안.
잔업 후 겨우 씻고 누웠을 무렵, 낯선 메시지가 도착했다.
프로필 사진은 아시아인 여성. 일본어로 보이는 이름. 아이디엔 “Sachiko_1991” 같은 게 붙어 있었다.
영어도, 한국어도 어설펐다.
“하이. 나는 너의 나라에 가고 싶어. 여행지를 추천해줄래?”
황당했지만 웃음이 났다.
지금껏 살아오며 나한테 그런 식으로 말을 건 사람은 없었다.
장난인가, 피싱인가, 싶다가도.
그날따라 외로웠던 나는 답장을 보냈다.
“B역 근처에 살아. 여긴 올 데는 못 돼.”
그녀는 이내 몇 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분명히 어딘가에서 퍼온 것 같은, 일본 관광 잡지 느낌의 사진들이었다.
그러면서도 말은 달콤했다.
“너의 도시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 너는 어떤 곳을 좋아해?”
나는 진짜 지도를 그려줬다.
내가 벗어나고 싶었던 구역.
어릴 때부터 살아왔던 동네, 그 골목, 골목의 악몽들.
그곳을 빠져나가려 했던 꿈까지.
그녀는 마치 그 꿈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 말했다.
“거기 가보고 싶어.”
그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행복했다.
누군가 나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느낌,
내가 떠나고 싶었던 이유를 아무렇지도 않게 이해해주는 감정.
그건 환희와 설렘이 뒤섞인 기묘한 따뜻함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녀는 없었다.
그저 어딘가의 조직적 로맨스 스캠.
텔레그램을 통해 남자들에게 접근해 정보를 얻고, 정을 들게 만든 뒤 계좌를 요구하거나 개인정보를 훔치는 방식.
나는 계좌를 넘기진 않았지만, 마음은 통째로 넘겨버렸다.
그리고 그 감정은 지워지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해봐야 욕먹기 딱 좋았다.
“그런 걸 믿냐?”
“너도 참…”
다들 그걸 그저 ‘해프닝’이라 부르겠지.
한가로이 웃고는 잊겠지.
하지만 난, 진심이었다.
그 이후로도 일상은 변하지 않았다.
주 6일, 하루 12시간.
쉬는 날은 없었다.
사장 놈은 틈만 나면 욕을 퍼붓고,
“네 나이에 이따위냐”는 말로 사람을 바닥까지 몰아붙였다.
나는 매일 시꺼먼 그림자 깔린 실내로 내려가
정신의 고통을 육체의 고통으로 덮었다.
그렇게 잊으려고 했다.
하지만 가끔, 어느 10월.
가을 끝자락의 저녁, 해가 일찍 지고 공기가 희미하게 젖어 있던 날.
그녀의 말투가 생각났다.
서툴고 어설픈 한국어.
“나는 너의 나라에 가고 싶어.”
나는 그 목소리마저 기억할 수 없는 존재에게, 저주를 속삭였다.
저주받고, 행복해져라.
내 진심이 너의 거짓을 거름 삼아 피어났으니.
그건 너의 몫이다.
그래도.
나는 사랑했다.
XX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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