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위의 묵시록 -1-

-단편선 <Sümpfe der Verzweiflung> -6-

by 김태광수

상아색 전기밥솥. 켜져있는. 시큼한 게 이제 막 올라올 것 같은데. 그래도 배탈날 수준은 아닌 것 같았다. 뚝배기 속으로 밥을 쑤셔 넣는다. 그리고 난 숟가락으로 그것을 비벼대었다. 게걸스레 배를 채우기 시작한다. 숟가락 위에 떠오른 파리 한 마리. 이미 늦었다. 목구멍을 쑤셔봐도, 격렬한 구역질 끝에 겨우 일부만을 토해냈을 뿐. 그 순간, 섬뜩한 깨달음이 뇌리를 스쳤다. 우리는 매일, 이렇게 살아간다는 것 말이다.


삶이란, 어쩌면 시체의 잔해를 씹어 삼키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식탁 위에 오르는 곡물, 채소, 고기. 그 화려한 이름들을 걷어내면, 결국 한때 꿈틀거렸던 생명의 흔적들이다. 생명 활동이라는 거창한 단어 뒤에는, 죽음과 소멸이라는 엄연한 진실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어린 시절, 방문했던 식당들은 늘 비위생적이었다. 기름때 낀 바닥, 눅눅한 공기, 끈적이는 검은 얼룩. 주방 벽을 기어 다니던 바퀴벌레, 싱크대 배수구 틈새에 엉겨 붙어 악취를 풍기던 채소 찌꺼기. 그 불쾌한 냄새는 묘하게도 음식의 감칠맛 뒤에 숨어, 우리는 그것을 음미하며 밥을 먹었다. 집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날파리가 득실거리는 싱크대, 곰팡이 냄새가 배어든 냉장고, 쌀벌레 사체가 뒹굴던 쌀통. 그때는 그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다. “먹고 살면 됐지.” 누군가의 무심한 듯한 한마디는, 어쩌면 당시의 내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밥상 기억은 고스란히 2011년 봄에도 이어졌다. 골목은 눅눅했고 허물어진 집들 사이로 먼지가 떠돌았다. 효성고등학교로 가는 길목의 허름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옆자리 손님이 낮게 속삭였다.


“중국에서 태아 캡슐이 들어왔다더라.”


그 말은 곧바로 퍼졌다. 시장에서도, 버스 정류장에서도 들렸다. 보약이라 했다. 값이 비싸다 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었다. 쌀 위에 작은 사체가 보였다. 쌀벌레였다. 숟가락으로 젖히고 그대로 삼켰다. 밥알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갈 때, 그 소문도 함께 삼켜졌다. 태아의 가루. 그 단어가 뼛가루처럼 이를 스쳤다.


(계속...)


-다음화는 12일 09시에 올릴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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