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OpenAI GPT 모델의 윤문 도움을 받아 작성되었으며, 아이디어와 구조는 필자가 직접 책임졌습니다. 최종 편집·검토 또한 필자가 진행했습니다. 본 글은 수익 창출 없이 공익적 목적으로 발행되며, 인용된 통계와 자료는 공식·국제 자료를 기반으로 범위 내에서 제시합니다.
오늘날 사회와 조직에서 되풀이되는 장면이 있다. 강자에게는 침묵하면서 약자를 향해 분노를 쏟아내는 모습이다. 국가 단위에서는 강대국을 건드리지 못한 채 이웃 나라끼리 갈등하고, 직장에서는 상사의 부당함에 저항하지 못한 채 동료끼리 반목한다. 개인 차원에서도 권위에는 복종하면서 자기혐오와 가족에 대한 공격으로 분노가 전이된다. 이 구조를 설명할 수 있는 두 명제가 있다. 하나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이고, 다른 하나는 프란츠 파농의 수직·수평 폭력론이다.
도킨스는 1976년 『이기적 유전자』에서 생명체의 본질을 새롭게 정의했다. 유전자는 스스로를 복제하는 존재이고, 개체는 그 복제를 위한 일시적 운반체에 불과하다. 따라서 협력과 이타성마저도 결국은 자기 복제의 이익을 위한 전략이다. 생태계는 협력의 장이 아니라 이기적 전략의 총합이며, 포식과 경쟁이 생명의 기본 질서라는 것이다.
파농은 전혀 다른 자리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다. 그는 마르티니크 출신 흑인 정신과 의사이자, 알제리 민족해방전선의 혁명가였다.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서 식민지인이 내면화한 자기혐오를 분석했고,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에서는 식민지 해방 과정에서의 폭력의 의미를 논했다. 파농은 폭력을 두 갈래로 구분했다. 지배 권력을 직접 겨냥하는 수직폭력과, 내부 약자나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수평폭력이다. 전자는 억압을 뒤집고 인간성을 회복하는 창조적 파괴지만, 후자는 구조를 유지한 채 파괴를 내부로 돌리는 자기 파멸적 폭력이다.
이 두 명제를 나란히 놓아보면 흥미로운 대응이 드러난다. 도킨스가 보기에 개체의 생존 행동은 유전자의 자기 복제를 위한 전략이다. 즉, 개체는 주체가 아니라 수단이다. 파농에게 식민지 민중의 내면적 고통과 폭력은 식민 권력의 구조적 산물이다. 즉, 억압받는 자의 심리와 갈등도 자율적 산물이 아니라 지배 구조의 결과다. 하나는 생태계의 이기성, 다른 하나는 권력의 포식성을 말하고 있지만, 그 구조는 동일하다.
생태계에서 상위 포식자는 먹이를 압도하고, 먹이종은 상위 포식자에게 맞설 힘이 없을 때 종 내부의 경쟁을 강화하거나 더 약한 종을 공격한다. 파농이 말한 수평폭력은 이와 다르지 않다. 직장에서 상사의 권위에는 저항하지 못하면서 동료를 배제하고 약자를 괴롭히는 현상, 국제정치에서 강대국에는 침묵하면서 약소국끼리 전쟁을 벌이는 현상은 모두 포식 구조의 사회적 변주다.
이때 중요한 차이는 방향성이다. 도킨스는 유전자 차원에서 이기성이 불가피하다고 보았지만, 파농은 그 폭력이 어디를 향하는지가 결정적이라고 했다. 수평으로 향하면 자기 혐오와 내전으로 끝나지만, 수직으로 향하면 해방과 새로운 주체의 창조가 가능하다. 즉, 인간은 포식 구조를 단순히 반복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사슬을 끊을 수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파농의 명제는 도킨스의 생물학적 통찰을 넘어선다.
조직 차원에서 보면, 제도와 규범은 유전자처럼 자기 복제를 위한 장치다. 조직은 스스로 존속하기 위해 구성원을 소모하며, 그 과정에서 구성원은 권위에 도전하지 못한 채 서로를 공격하는 수평폭력에 빠진다. 개인 심리에서도 마찬가지다. 권위와 사회 규범(초자아)에 맞설 수 없는 분노는 자기혐오와 자해, 가족에 대한 공격으로 전이된다. 이 구조를 벗어나려면 포식 사슬을 위로 향해 끊어내야 한다. 그것이 파농이 말한 수직폭력의 의미다.
결국 도킨스와 파농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같은 명제를 남겼다. 인간과 사회는 본질적으로 포식적 관계망 위에 존재한다. 도킨스는 이를 유전자의 이기성으로, 파농은 권력의 폭력성으로 설명했다. 두 사유를 아우르면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생명과 사회 모두 자기 복제와 포식의 원리로 움직이지만, 인간에게는 단순히 옆을 무는 것이 아니라 위로 향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다. 해방은 오직 수직적 전복에서만 가능하다.
이 때문에 파농은 제3세계 혁명가가 아니라, 인간 사회의 포식적 본질을 해부한 인문학의 핵심 인물로 읽혀야 한다. 도킨스와 파농을 함께 읽는 일은, 생명의 차원과 사회의 차원을 동시에 직시하는 작업이다. 그것은 우리가 누구를 향해 분노해야 하는지를 묻는 동시에, 그 분노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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