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의 행진 : 어느 만화가의 잔상

김태광수 단편선

by 김태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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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 제목 : Marilyn Manson - HALF-WAY AND ONE STEP FORWARD)


그를 처음 본 건 초겨울 끝이었다. 도시 외곽의 낡은 상가, 유리문엔 손자국이 겹겹이 묻어 있었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이 왔다가 떠난 흔적이 아니라, 안과 밖이 단절된 공간을 주인공 혼자 드나든 세월의 잔상처럼 느껴졌다. 간판에는 희미한 글씨로 ‘성심분식’이라 적혀 있었다. 분식이라기엔 냄새가 지나치게 묵직했다. 기름때와 오래된 습기가 뒤섞여, 마치 시간 그 자체가 응고된 것 같은 냄새였다.


식당 안은 좁고, 벽에는 누렇게 바랜 만화 원고가 액자처럼 걸려 있었다. 잉크가 번지고, 종이는 갈색으로 굳어 있었다. 그가 그렸다던, 1990년대 후반에 논란이 되어 사라진 그 만화였다. 그림 속 인물들은 여전히 울고 웃고 있었지만, 그 감정들은 마치 박제된 곤충처럼 현실과 분리되어 있었다.


“만화 그리던 분 맞으시죠?” 내 물음에 그는 젓가락을 맞추다 멈췄다. 그의 눈빛은 찰나, 먼 곳을 헤매다 돌아왔다. “그랬죠. 옛날엔.” 짧은 대답이었다. 그의 손가락 마디마다 잉크 얼룩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 얼룩은 마치 지울 수 없는 문신처럼, 그가 여전히 그 시절의 분노와 미련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증거처럼 보였다.

식당은 조용했다. 손님이 나가면 그는 TV의 소리를 지나치게 크게 키우고 뉴스를 보며 욕을 했다. 소리는 벽을 치고 돌아와 그의 분노를 증폭시켰다. 정치인 이름이 자막으로 흐를 때마다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의 욕설은 세상 전체를 향한 격렬한 저주였다. 때때로 나를 흘끗 보며 중얼거렸다. “요즘 사람들은 이런 걸 안 믿지. 진짜 상처는 잊고, 가짜 위로만 찾지.” 그의 목소리는 피곤했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싸움의 열이 병적으로 남아 있었다. 나는 그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싸움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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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 제목 : Marilyn Manson - SOLVE COAGULA )


그는 198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모든 것이 폭력으로 통하던 시절이었다. 체벌은 훈육이었고, 성적은 인간의 서열이었다. 그는 늘 운동장 구석에서 맞았다. “눈빛이 싸가지 없다.”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폭력에는 이유가 필요 없었다. 교사는 회초리로 다리를 때렸고, 반 아이들은 그것을 구경했다. 그들에게 고통은 전시물이었다. 그의 이름은 게시판에 ‘생활태도 불량’으로 붙어 있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불량품으로 규정되었다.

그는 미술부였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그가 그리던 건 일본식 컷 구성이었다. 그 시절엔 금서였다. 그는 부천역 뒷골목의 문구점에서 일본 잡지를 빌려 몰래 가슴에 넣고 다녔다. 그것은 억압된 현실로부터의 유일한 도피처였다. 담임이 그것을 빼앗아 찢으며 말했다. “이게 니 정신이야. 나라 팔아먹을 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찢긴 종이 한 조각을 주워 가방에 넣었다. 그것은 파괴된 꿈의 가장 작은 조각이었다. 그게 그의 첫 원고였다고 했다. 그의 웃음은 오래된 흉터 같았다. 아물었지만, 당길 때마다 아픔이 느껴지는.


1987년 무렵, 그는 스무 살이 되었다. 서울은 거대한 공사판이었다. 올림픽을 앞둔 도시의 먼지는 늘 회색이었고, “발전”이란 단어가 사람들의 입에서 고통을 잊기 위한 기도문처럼 되뇌어졌다. 그는 야간 물류 알바를 했다. 비닐포대에 밀가루 자루를 날랐고, 덤프트럭의 매연을 들이마시며 살았다. 함께 일하던 형이 정치 이야기를 꺼냈다. 노조, 선거, 부패. 그는 아무것도 몰랐다. 다만, 형이 “정의”를 외칠 때마다 짐을 덜 떠맡았다. 그는 그때 깨달았다고 했다. “정의는 결국 누가 덜 힘드냐의 문제더라. 힘없는 자에게 정의는 짐을 떠넘기는 변명일 뿐.”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그는 만화가가 되었다. 신문 한 귀퉁이에서 연재가 시작됐다. 그의 그림에는 그 시절의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찢어진 교과서, 담배 냄새, 공장 불빛, 트럭의 매연. 초기에는 사회의 밑바닥을 긁는 염세적인 시선이었으나, 점차 그의 그림은 노골적인 폭력과 성적인 묘사를 여과 없이 담으며 그로테스크해졌다. 묘사의 성숙도는 점점 떨어졌고, 스토리 전개는 조잡함과 천박함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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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 제목 : Marilyn Manson - INFINITE DARKNESS)


그러나 독자들은 웃지 않았다. 그가 풍자한 건, 정치인도, 권력자도 아니었다. 점차 논리는 사라지고 극단적인 혐오와 조롱만이 남았다. 자신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 어설픈 선의와 가짜 도덕에 기생하는 대중이었다. 대중은 자신을 희화화한 자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들의 민낯을 본 거울을 부수는 행위였다. 그의 연재는 중단됐고, 비난이 쏟아졌다. 그는 펜을 놓았다. 창조의 도구를 버리고 대신 컴퓨터를 켰다.


PC통신의 시절이었다. 잉크 대신 자판, 지우개 대신 백스페이스. 오류와 흔적 없는 분노의 시대가 열렸다. 그는 새벽마다 CRT 모니터 불빛에 얼굴을 비추며 글을 썼다. 그의 글은 단순한 사회 비판을 넘어섰다. 모든 부패와 위선을 '종북'과 '좌파'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몰아붙였다. 극단적인 반공주의가 그의 새로운 붓이 되었다. 독설은 더욱 노골적이고 천박해졌다. 그의 글은 독설이었고, '만화가 아닌 또 하나의 만화'였다. 댓글은 조롱으로 가득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이제야 진짜 독자를 만난 기분이에요. 나와 같은 상처와 증오를 가진 사람들.” 그의 말은 확신에 가까웠다. 그의 분노는 마침내 그가 원했던 메아리를 찾았다.


2000년대 초, 그의 아이디는 커뮤니티에서 유명해졌다. ‘정직한 분노’라는 이름 아래 모인 사람들은 그의 문장을 복사해 짤로 만들고, 확산시켰다. 그는 그 안에서 지도자처럼 군림했다. 그러나 그것은 창작이 아니라 분노의 무한한 복제였다. 그의 분노는 점점 방향을 잃었다. 그가 비판하던 부패와 위선은 사라지고, 남은 건 세대와 성별, 계층에 대한 혐오와 광신적인 이념이라는 정제된 독이었다. 그는 더 이상 사회를 비판하지 않았다. 그는 세상을 증오했고, 그 증오를 통해 인정받았다. “내가 틀린 게 아니에요. 세상이 망가졌을 뿐이지.” 그는 담담히 말했다. 하지만 그가 욕하던 세상은, 그의 문장으로 이미 망가졌다고 선언된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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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 제목 : Marilyn Manson - BROKEN NEEDLE)


어느 날, 그는 새 만화를 그리려 했다. 오래된 태블릿 위에서 선을 긋는 순간 손이 떨렸다. “이제 그릴 게 없어요. 웃음도, 슬픔도, 시대의 모든 표정이 다 희화화돼 버렸어요.” 그는 모니터를 껐다. 그날 이후 펜을 잡지 않았다. 그의 창조적인 삶은 끝났다.


몇 년이 지난 2018년. 나는 다시 그를 찾아갔다. 식당 구석에 낡은 데스크탑이 켜져 있었다. 화면엔 커뮤니티 창이 열려 있었고, 그의 아이디가 댓글을 달고 있었다. “나라가 미쳐가고 있다.” 내용은 예전과 같았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그는 여전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분노는 이제 습관적인 생존 방식이었다. 밖에선 빗방울이 떨어졌다. 나는 그가 세상과 싸우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든 분노의 메아리 속에 살고 있음을, 그 메아리가 곧 그의 감옥임을 깨달았다.


식당을 나서자 공기는 차가웠다. 거리에선 포장마차 김이 올라왔고, 철거 중인 건물 벽에는 “근면·자조·협동”이란 구호가 껍데기처럼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의 세계는 오래전에 무너졌지만, 그 폐허 위에서 누군가는 여전히 그의 분노를 따라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성적인 동정만이 남았다. 그의 분노가 시대의 폭력에서 시작되었음을 인정하지만, 그 결과로 타인을 향한 혐오와 고립을 낳았음을 냉철하게 직시하는 시선. 그것이 내가 본 마지막, 슬프게도 가장 진실된 인간적인 표정이었다.



P.S - 원래 분량 나눠야하는데 실수로 한번에 올렸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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