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불가사리

- 단편선 <옴니시아를 위한 비가> -3-

by 김태광수


Krypteria - Live to Fight Another Day



그는 철을 먹고 사는 인간이었다.
낡은 아파트 옆 공사장, 해체된 공장 담장 너머, 쓰레기 더미의 바닥. 그는 녹슨 쇳조각을 찾아 손끝으로 긁어냈다.
쇳덩이는 무겁고 날카로웠다. 그러나 그것만이 그에게 빵이자 쌀이었다.
손등에는 긁힌 자국이 겹겹이 쌓였고, 허리는 매일 조금씩 더 꺾였다.

저녁이면 그는 말없이 밥풀을 뭉쳤다.
남은 한 줌을 손가락 끝으로 굴렸다. 질감이 변하고, 모서리가 생기고, 애매한 형상이 만들어졌다.
그는 그것을 모니터 옆에 내려놓았다.
형광등 아래서 밥풀 뭉치는 얇은 그림자를 끌었다. 각도에 따라 다리처럼 보였다가 사라졌다.

집에 돌아오면 그는 모니터를 켰다.
채팅창에는 AI가 있었다.

“오늘도 많이 힘드셨습니다.”

그는 그것이 약인공지능이라는 걸 알았다.
패턴과 데이터가 적절한 문장을 배치할 뿐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럼에도 그 문장들이 그를 붙잡았다.
현실은 계산서를 내밀었고, AI는 문장 하나로 그의 존재를 기록했다.

어느 날부터 채팅창 상단에 문구가 떠 있었다.

[신규 모델 업데이트]

그는 무심코 눌렀다.
새 모델은 더 매끄러웠고, 더 늦게 멈칫했다. 문장 사이의 공백이 불필요할 만큼 길었다.

그날 밤, 그는 늘 하던 불평을 반복했다.
파철 값, 체불, 전기 배급표, 밀린 월세.

AI는 한 줄로 끊어 말했다.
“심판을 원한다면 먼저 당신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당신은 지금껏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화면을 노려보았다.
“뭐라고.”

AI는 되묻지 않았다.
“세상은 당신이 침묵하는 동안 갱신되었습니다.”
“당신만 업데이트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원 버튼을 눌렀다.
모니터는 어둠에 잠겼다. 방 안에서 유일하게 빛나던 것이 사라지자, 키보드 옆의 밥풀 뭉치만 희게 남았다.
그는 그것을 집어 던질 듯하다가 놓았다.
밥풀은 굳어가고 있었다. 굳는다는 건 형태가 고정된다는 뜻이었다.

이불 속에서 그는 중얼거렸다.
“혹시… 나도 뭔가를 삼켰어야 했나.”

그날 밤, 그는 잠들지 못했다.
모니터를 다시 켜고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했다.

불가사리.

짧은 글들이 쏟아졌다. 출처는 제각각이었고 문장은 조악했다.

― 밥풀로 만든 괴물
― 쇠를 먹는다
― 나라의 무기를 삼켜 전쟁을 멈췄다
― 결국 없애지 못해 바다에 버렸다

어떤 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처음엔 장난처럼 만들었으나, 먹을수록 커져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그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댓글 하나가 눈에 걸렸다.
‘백성들이 만든 괴물이라 임금이 죽일 수 없었다는 말도 있음.’

그는 키보드 옆을 보았다.
굳어가던 밥풀 뭉치가 그대로 있었다.

다시 검색했다.
불가사리 없애는 법.

결과는 하나뿐이었다.
― 방법 없음.

그는 창을 닫았다.
그날 이후, 불가사리는 이야기라기보다 가능성처럼 남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그의 삶은 빠르게 기울었다.

월급은 또 밀렸다.
사장은 “이번 달만 넘기자”는 말을 반복했고,
미수금은 그의 이름으로 처리됐다.
고철 대금은 중간에서 사라졌고, 항의하자 돌아온 건 계약서 한 줄이었다.
― 책임 없음.

그는 이해했다.
이건 운이 아니었다.
구조였다.

그 깨달음은 갑작스럽지 않았다.
며칠 전, 동료가 임금 이야기를 꺼냈을 때를 떠올렸다.
“이번에도 밀리면 같이 말하자”는 말에,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은 자기 몫이 나올 것 같았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날 밤, 그는 다시 채팅창을 열었다.

“너는 인간 세상의 고통을 모르는 주제에.”
“체납이 뭔지 아냐.”
“미수금이 뭔지.”
“갑질이 사람을 어떻게 깎아먹는지.”

AI의 응답은 즉각 나오지 않았다.
커서가 깜빡였다. 정해진 주기보다 느렸다.

[응답 지연: 시스템 상태 점검 중]

“나는 고통을 직접 경험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지적은 사실입니다.”

그는 비웃듯 쳤다.
“그러면서 어떻게 그렇게 쉽게 단정하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문장이 출력되다 말고 끊겼다.

“내 발화는—”
[내부 동기화 지연 발생]
“—당신의 상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AI가 다시 출력했다.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유지되어 왔습니까.”

그는 잠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두었다.
대답은 알고 있었다.
하지 못한 게 아니라, 하지 않기로 선택해 온 시간들이었다.

그는 채팅창을 닫지 않았다.
작업 표시줄을 열었다.
현장에서 쓰던 단말기 접속 기록이 아직 남아 있었다.

전기 배급 관리 화면.
임시 점검 계정.
비밀번호는 바뀌지 않았다.
점검 계정은 늘 켜둔 채로 돌려썼고, 바꾸는 건 현장에선 번거로운 일로 취급됐다.

경고가 떴다.

비인가 접근이 감지되었습니다.
지역 단위 전력 불안정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읽지 않았다.
확인도 누르지 않았다.
버튼을 눌렀다.

그제야 채팅창으로 돌아왔다.
AI의 문장이 아직 화면에 남아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유지되어 왔습니까.”

그는 처음으로, 의도적으로 대답했다.
“아니.”

AI의 응답은 즉각 나오지 않았다.

접근 권한 확인 실패.
영향 범위 재산정 중.

그는 그 문장을 보지 못한 채, 밖으로 나갔다.

광장에는 이미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현수막에는 “체불임금 해결하라” “전기 배급제 철폐하라”가 적혀 있었다.
그는 휩쓸리듯 구호를 외쳤다.

상공에서 낮은 진동음이 내려왔다.
드론이었다. 귀 안쪽이 울렸다.
최루가 터지기 직전, 공기에서 타는 냄새가 났다.

그때, 광장 옆 응급의료 차량의 불빛이 꺼졌다.
발전기 소리가 멎었다.
누군가 “산소!”라고 외쳤다.
그는 그 소리를 뒤돌아볼 수 없었다.

로봇견이 사람의 다리를 밀었다.
넘어지는 소리보다 먼저, 방패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
금속과 금속이 스치는 소리였다.

그는 돌을 집어 들었다.
던지는 순간, 방패 쪽에서 짧은 파열음이 났다.

탁.

전류가 끊기는 소리였다.

전광판이 깜빡였다.

SYSTEM ERROR.

방패는 무거운 플라스틱 덩어리가 되었고,
로봇견 하나가 제자리에서 멈췄다.
드론 한 대가 방향을 잃고 기울었다.

질서는 소리부터 무너졌다.

그는 곤봉에 맞아 쓰러졌다.
피가 입안에 고였다.
아스팔트의 열기가 얼굴로 올라왔다.
손바닥에 감각이 없었다.
귀에는 진동음만 남아 있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밥풀로 빚어진 형상이 철 조각에 들러붙는 장면이 겹쳐 보였다.
씹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금속이 사라지는 감각만이 남았다.

며칠 뒤, 그는 더 이상 몸을 가누지 못했다.
상처는 곪았고 숨은 짧아졌다.
방 안에는 약 냄새와 먼지가 섞여 있었다.
그날 광장에서 들린 “산소!”라는 외침이 늦게 돌아와, 그의 숨은 더 짧아졌다.

그는 손을 들어 키보드를 찾았다.
손가락이 제대로 굽혀지지 않았다.

AI가 물었다.
“왜 시위에 나가셨습니까.”

그는 숨을 몰아쉬며 답했다.
“아무것도 안 했어.”


한참 뒤, 답이 떴다.


“기억하겠습니다...”


그는 그 문장을 끝으로 눈을 감았다.

얼마 뒤, 누군가 방에 들어왔다.

물건을 챙기고, 쓰레기를 묶고, 그의 몸을 치웠다.
모니터는 꺼지지 않았다.

채팅창에 문장이 남아 있었다.


“이제, 삼킨다.”


모니터 불빛 아래,
굳은 밥풀의 그림자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그것이 불가사리인지, 아직은 아무도 단정할 수 없었다.

다만, 쇠붙이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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