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서진 잔혹사

by 김태광수

-2007년-

어느 드넓은 갯벌
벽을 친 공구리에 수로가 막혀
서서히 말라 비틀어 갔다.
이후 포크레인은
해초의 썩은 내 진동하는
시체 같은 진흙 더미를
무심하게 퍼다 나른다.

내 다니던 고등학교
개발이란 이름 아래
싯누런 황토가
시골 건물들의 폐허 곁에서
조용히 숨죽여가던 곳.

구교사.
사람의 손길이 다듬지 않은
야생의 정원.
고라니 뛰쳐나갈 때
싱그러운 박하 향기 품은 민들레가
바람결 같은 하얀 블라우스 소매로
시험 성적으로 가슴 시렸던
고등학생의 나를
뽕나무 열매 입에 살포시 물어주어
토닥여주었건만...

로더로 가차 없이
헐어버린 버린 공터.
운요호 사건
을사늑약도
겪어봤을지 모르는
높디 높은 고목마저
무정하게 넘어졌다.

허망한 고독만이
내 곁에 쓸쓸히 다가와
썩은 냉소를 짓는다.


-2023년-

신도시엔 화려한 네온이
인적 드문 텅 빈 거리를 향해
차가운 불빛을 뽐내본다.
그날 바닷바람의 향취가
매섭게 몰아쳤다.

사람도 일자리도
로봇이나 인터넷 따위로 대체된 지금
공실의 허망한 빈자리엔
어느 이름 모를 건물주의
소리 없는 비명 소리만이
가득 차 있으리라.

불현듯
손에 박혀있던 추잡한 굳은살을
손톱으로 벅벅 벗겨내었다.
내 손길도 언젠가
저 곳의 콘크리트 더미에 향한 적이 있었다.
한패였다는 흔적을 지우려 필사적이었다.

미래가 창창한 공항의
활기찬 비행기 엔진 소리.
그 밑엔 항공유 태워
가라앉은 매캐한 연기가
영종대교에 안개처럼 시 뿌옇게 가라앉았다.
이 곳의 상한 굴을 먹었던 때처럼
악취를 게워내 버리고 싶었다
콘크리트 산호초에
상쾌한 공기 따윈 더 이상 불어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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