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회사 화폐의 오래된 그림자

-비정기 에세이 시리즈

by 김태광수

※ 이 글은 상업적 의도가 아닌 공익적 문제 제기를 목적으로 합니다.
글의 발상은 개인적인 통찰에서 비롯되었으나, 구체적인 과학적 사례와 전문적 맥락은 AI 보조 도구의 도움을 받아 심화되었습니다.
만약 이러한 도구가 없었다면, 필자는 여기까지 도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블록체인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한 가지 장면이 겹쳐 보인다. 불법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던 공장주가 법정화폐 대신 자체 발행한 쿠폰으로 임금을 지급하던 장면이다. 바깥에서는 쓸 수도 없고, 결국 공장 안에서만 교환 가능한 그 종이는 공장주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도구였다. 노동자는 탈출할 수 없었고, 고용주는 절대적 권한을 쥐었다. 블록체인이 지닌 구조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현금은 사실상 국가가 발행하는 채권이다. 이자와 만기가 없을 뿐, 국가가 언제든 가치를 인정해 주겠다는 약속이 그 배경에 있다.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에서 현금은 부채로 기록된다. 즉, 우리가 손에 쥐는 지폐 한 장은 국가의 신용을 바탕으로 한 특수한 형태의 영구채인 셈이다. 이 신뢰가 무너지면 화폐도 무너진다. 역사 속 하이퍼인플레이션 사례들이 이를 증명한다.

블록체인 토큰은 다르다. 발행 주체가 국가가 아닌 재단, 기업, 혹은 알고리즘이다. 법적 강제력이 없고, 세금으로 보증되지 않는다. 신뢰의 기반은 오직 발행자의 평판, 코드, 그리고 참여자들의 합의뿐이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탈중앙’이라는 이상은 흔적만 남아 있고, 실제 권력은 거래소, 재단, 대형 채굴풀에 집중된다. 다시 말해, 다수의 참여자가 함께 지탱하는 구조라기보다는 소수의 사적 권력에 기대는 구조다.

이런 점에서 블록체인은 과거 광산 마을에서 쓰이던 회사 화폐, 즉 스크립을 떠올리게 한다. 회사가 발행한 스크립은 마을 상점에서만 사용 가능했고, 노동자는 그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블록체인 토큰 역시 거래소가 닫히거나 규제가 강화되면 현금화할 출구가 막히고, 순식간에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 루나/테라 사태는 그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다. 다만 개인의 눈으로 보기에 블록체인은 국가라는 최종 보증인이 없는 채권, 혹은 사적 화폐에 가깝다. 국제결제은행(BIS)과 IMF도 비슷한 지적을 한다. 블록체인을 “사적 화폐(private money)”라 부르며, 국가 화폐와 달리 구조적 취약성이 크다고 말한다. 표현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신뢰의 토대가 불안정하다는 점이다.

물론 블록체인이 새로운 기술인 것은 사실이다. 분산 원장과 합의 메커니즘은 기존 금융 구조에 도전하는 잠재력을 품고 있다. 그러나 화폐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신뢰다. 국가라는 뒷받침이 없는 한, 블록체인은 언제든 회사 화폐의 그림자를 닮아갈 수밖에 없다.

이 글은 확정적 결론이 아니다. 오히려 독자와 함께 던지고 싶은 질문이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화폐 혁명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과거의 오래된 착취 구조가 다시 포장되어 나타난 것을 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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