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하고도 30분 그리고 18시

단편선 - <Sümpfe der Verzweiflung> -7-

by 김태광수

나는 위기에서 침착해진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15시 30분


삼촌이 전화를 걸어왔다.
“택시 타고 지금 당장 XX병원으로 와.”
목소리는 갈라졌고, 문장은 닫히지 않았다.
나는 지갑을 확인했다. 돈이 없었다.
오후 세 시 반, 북부 라인은 막힌다.
택시는 늦는다. 지하철이 빠르다.
“지하철로 갑니다.”

병원 입구에서 삼촌이 기다리고 있었다.
눈은 초점을 잃었고, 손이 먼저 날아왔다.
뺨에 불이 번졌다.
“왜 내 말을 안 들어.”
나는 숨을 셌다.
네 박 들이마시고, 네 박 멈추고, 여섯 박 내쉰다.
수첩을 꺼내 적었다.
증상 시작 시각. 영상 소견. 예정 처치.
글씨는 일정했고, 감정은 비워졌다.


18시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막내삼촌이 어제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내 방엔 아무도 들이지 마라.”
그 순간, 어제의 소리가 다시 들렸다.
119가 떠난 직후였다.
복도는 고요했고, 현관이 떨렸다.
삐— 삐— 삐삐—.
문이 열렸다.
“나오지 말랬지.”
그 말은 누구를 향한 것이었을까.
문이 닫히자, 방 안의 공기가 살짝 줄었다.
내가 숨을 쉰 건지, 누군가 대신 쉰 건지 알 수 없었다.



03시


병원 로비는 얼어붙은 수조 같았다.
식물 잎 끝이 에어컨 바람에 흔들렸다.
경비원은 커피를 들고 지나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수첩을 펼쳤다.
허혈. 위치. 경과.
글씨는 균일했다.
그러나 균일한 글씨 뒤에서 리듬이 맴돌았다.
삐— 삐— 삐삐—.
출입의 신호가 아니라 분리의 신호.
방 안의 사람은 증인이 될 수 없다.
절차는 그를 지운다.

어머니는 병실에서 잤다.
호흡은 규칙적이었다.
모니터 파형도 규칙적이었다.
그러나 규칙이 클수록 불안은 더 깊어졌다.
규칙 사이의 공백을, 아무도 해석하지 않았다.


공장


201X년, 공장이 개장되었다.
창업은 미친 짓이었다.
자본주의는 불안을 담보로 평온을 금지한다.
퇴직금은 안전망이 아니라 미끼였다.
겨울엔 현장이 멎고, 어음은 돌아왔다.
갱신되는 공포, 연장되는 체납.
세 개의 가정이 있었다.
공장은 그 셋을 묶었다.
누군가는 주지 못했고, 누군가는 받지 못했다.
못 주는 자와 못 받는 자, 둘 다 같은 절벽 위에 있었다.
그때부터 절차가 시작됐다.
생존을 위한 계산, 계산을 위한 삭제.
감정의 여백을 덮는 숫자들.
공장은 사람을 숫자로 삼켰다.

전날


9월 17일.


어머니는 일하다 쓰러졌다.
삼촌은 그 전 주에 크게 다쳤다.
불길은 쌓였고, 18일에 터졌다.
119는 어머니를 싣고 갔다.
나는 방 안에 남았다.
삼촌은 말했다.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 말은 절차였고, 동시에 주문이었다.
사람을 지우는 주문.


창가


병실 창문 아래로 도로가 비어 있었다.
자동문이 닫히며 낮게 울렸다.
딱.
그 소리에 번호키 리듬이 겹쳤다.
삐— 삐— 삐삐—.
어머니는 규칙적으로 숨을 쉬었다.
나는 창에 손을 댔다.
유리는 한참 만에 온기를 흡수했다.
체온이 옮겨 붙는 동안, 나는 다시 숨을 셌다.
네 박 들이마시고, 네 박 멈추고, 여섯 박 내쉰다.
창문 너머의 그림자 하나가 내 움직임을 따라 했다.


미확인


삼촌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외숙모는 말했다.
“좀 쉬게 두자.”
쉬는 것일까.
아니면 절차를 끝내는 중일까.
번호키 리듬은 여전히 귓속에 남아 있었다.
삐— 삐— 삐삐—.
그건 출입의 신호가 아니라
내 존재를 지워버린 증명서 같았다.


끝맺음


내 수첩에는 아직도 세 개의 시간이 남아 있다.
15시 30분. 18시. 03시.
좌표는 고정되어 있다.
사건은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는 사건은 해석을 허락하지 않는다.
남는 건 소리뿐이다.
삐— 삐— 삐삐—.
왜 그때 방에서 나오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것이다.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그러나 그 대답은 내 목소리가 아니다.
누군가가 대신 말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방 안에 있는지,
아니면 이미 지워진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번호키 리듬은 오늘 새벽에도 울렸다.
누군가의 방에서.


P.S 여러가지로 구상이 많이 조악해졌습니다. 독자분들 께 정말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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